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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1998.06.29 00:00
  • 호수 230

심훈문학상 당선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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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씁씁한 기분도 잠시였다. 골목을 거의 다 내려와 해풍장으로 들어가려는데, 307호의 턱수염이 말했다.
“알고 계시나요? 사람이 죽었다는군요. 그래서 거기 가 보려는 참인데.”
“사람이 죽어요?”
생각지도 않았던 뜻밖의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골목을 내려올 때 몇몇 사람들이 두런대며 내려가던 것이 떠올랐고, 선착장 쪽의 두 다리 위로도 몇몇 사람들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걸음걸이로 오가고 있는 게 보였다. 허나, 턱수염의 다음 말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고 있었다.
“그래요. 그 무당인지 중인지 하는 사람이 죽었다는군요.”
얼핏 땡중이 떠올랐다. 하지만 곧 땡중이 아니라 남장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게 깨달아졌다. 아마는 ‘중인지...’라는 말 때문에 땡중을 떠올리게 되었을 것인데, 땡중은 이미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땡중으로 통하고 있었고, 굳이 그를 땡중이라 지칭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냥 중이었으면 중이었지 무당이란 말은 쓰지 않을 것이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잠시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 있자 턱수염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생각했는지 다시 말했다.
“왜 있잖습니까. 방파제 끝에서 저 혼자 굿을 하는 것인지 제를 올리는 것인지를 하던 남장 여잘 말입니다.”
“우리도 압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작스럽게 왜...?”
“난들 알 수 있습니까.”
“그거 참...”
“가 보지 않겠습니까. 동백림 너머 바닷가라고 합디다만, 어떻든 태풍이 비켜갔다 해도 오늘 역시 배가 뜨기는 틀린 모양인데.”
배가 뜨기는 틀린 모양인데..., 그렇게 말하는 것에는 남장의 그 뜻밖의 죽음을 어떤 사건으로 대한다기 보다는 이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에 더없이 좋은 흥미거리로 대하고 있다는 것이 짙게 깔려 있었다.
내 여자와 처남댁은 가지 않겠다고, 뭣하러 그런 것을 구경하느냐며 먼저 여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하여 처남과 나만이 턱수염을 따라 동백림 쪽으로 갔다. 사실 나는 그러려고 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도 모르게 그 남장을 마음에 걸려하던 터였고, 이쯤에서는 그네의 죽음이 몹시 궁금해지고 있었다. 주근깨가 했던 남장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금 떠오르면서 말이다.
동백림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오래고 천연상태인 동백나무 군락지를 보호하기 위해 가운데로 조그만 길을 내고 양편으로 철망을 쳐 놓아 길에서만 동백나무들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그 끝에 이르면 낭떨어지였다. 그리고 낭떨어지 중간쯤에는 저 아래 바닥으로 내려가는 길이 빗물 흘러내리는 골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나 있었다. 본래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생겨나는 게 길이긴 하지만 낭떨어지 아래로 내려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골을 타고 오르내리다 보니 생겨나게 된 그런 길이었다. 사람들은 낭떨어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했고, 자칫하다가는 그대로 미끄러져 떨어지기 십상인 그 길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 있기도 했는데, 그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오늘 역시도 배가 뜨기는 틀린 모양인데...’라던 턱수염과 똑같은 표정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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