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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8.08.17 00:00
  • 호수 236

사상 최대의 수해 <특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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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과 9일 사이 재앙의 밤 - 수해현장일지

진흙탕 속에 잠겨버린 터전

융단폭격 맞은듯 처참한 피해
당진시내들 순식간에 허리까지 물 차올라
단전·단수·전화불통, 공포로 밤새고 보니···

밤 지새고 가게를 보니···

당진군 관측사상 최고인 349㎜의 강수량을 기록한 이번 집중호우로 당진읍 시가지는 일순간에 거대한 폐허의 도시로 변해버렸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로 몸만 가까스로 피한 주민들은 전기와 전화가 잇따라 끊기는 가운데 두려움에 떨며 초조하게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날이 밝아 조심스럽게 각자 집과 상점으로 발길을 옮긴 주민들은 그러나 눈앞에 벌어진 참상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 마련한 생계터전이 하루아침에 흙탕물에 뒤덮여 쓰레기더미로 변한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자기 눈을 의심했다.
특히 상점이 지하에 있는 경우는 피해가 더욱 극심했다. 경찰서 부근 건물지하에서 호프집을 경영하고 있던 김모(29세)씨는 엄청난 피해에 몸서리를 쳤다.
“상점이 지하에 있어 완전히 침수됐으며 에어콘, 냉장고, 오디어 등의 전자제품과 인테리어, 재료 등이 모두 못쓰게 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또한 지대가 낮아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 중의 하나인 읍내파출소 부근에서 칼국수 집을 경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에어콘, 냉장고 등 전자제품과 음식재료, 이불 등이 모두 못쓰게 되었으며 전기가 누전되고 전화가 불통되는 등 각종피해를 입어 앞으로 생계가 막막하게 되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근처에서 다방을 경영하는 한 상인은 “하수구로 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어떻게 손 쓸 사이도 없이 냉장고, 식기건조기, 에어콘, 텔레비젼, 히터, 공중전화가 모두 망가졌다”면서 “밤새 펌프로 퍼내고 지하수로 씻어내는 등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으나 얼마나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몹시 흥분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진열대 상품이 순식간에 쓰레기로

이번 수해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상설시장은 그야말로 융단폭격을 맞은 듯 자연의 대재앙앞에 처참한 몰골을 드러냈다.
전날까지만 해도 소비자의 눈길을 유혹하던 각종 시장상품들이 하루아침에 흙투성이 쓰레기로 변해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상점의 물을 퍼내고 집기와 상품을 씻느라 바쁜 손을 놀리고 있는 상인들의 옷이 모두 흙투성이어서 당시의 처참함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듯했다.
특히 영세상인들이 밀집한 곳이라서 피해의 파장은 더욱 컸다. 유일한 생계수단인 상점의 물건을 쓰레기로 버리는 상인들의 얼굴은 슬픔과 충격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일부 상인들은 물에 흠뻑 젖은 물건을 10∼20%도 안되는 가격에 팔고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식품가게를 경영하는 한 상인은 “물이 1m이상 차올라 건어물, 양념 등 각종 식품이 잠기는 바람에 모두 버리게 되었다”면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시장에서 가방가게를 하고 있는 한 상인은 “상가와 창고에 있는 가방 대부분이 물에 잠겨 모두 버리게 되었다”면서 흙탕물에 젖은 가방들을 쓰레기차에 옮겨 실었다.
시장에서 가전제품 매장을 경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전체 상품의 60∼70%가 물에 잠겨 재생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면서 “미처 손 쓸 사이도 없이 물이 밀려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당시의 안타까웠던 심정을 토로했다.


하수도 넘쳐나는 도로에서 우왕좌왕

수해가 발생한 8일 오후 4시쯤 폭우가 왔으나 곧 그쳐 많은 주민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9시경부터 다시 시작된 집중호우로 인해 시내 곳곳이 무릎까지 물이 차는 등 수해가 우려되었다. 그러나 10시경부터 물이 빠지기 시작하여 한 시름 놓는 듯했다.
그런데 11시경부터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천둥번개가 천지를 뒤흔들었고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폭우로 변해 물이 순식간에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하수도가 역류하여 악취가 코를 찔렀으며 시내를 지나가던 차들이 허리높이까지 순식간에 불어난 물 때문에 길 한가운데 갇혀 우왕좌왕 했으며 결국은 차를 포기하고 대피하기 시작했다.
시내는 삽시간에 강으로 변해 빗물은 거센 물결을 이루면서 저지대로 흘러갔다. 시내도로는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차량과 사람들로 뒤엉켰으며 천둥번개와 폭우소리까지 더하여 마치 전쟁터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였다.
소방파출소에서는 사이렌을 울려서 주민들에게 대피할 것을 알렸으며 군청차량은 “차량운행을 하지 말고 빨리 대피하라”고 방송했다.
주민들은 물이 계속 차오르자 상점과 차량을 포기하고 높은 곳으로 급히 대피했다.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 급격히 불어난 물에 의해 급기야 당진천이 범람해 주위의 주택가까지 덮쳤으며 정전과 전화불통이 몇차례 이어져 시내전체가 암흑천지로 변하고 가족간에 연락이 끊겨 주민들은 극도의 공포에 떨었다.
새벽 2시부터는 비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으나 시내전체가 거대한 호수가 되어버린 당진읍은 좀처럼 물이 빠지지 않았다. 주민들은 극도의 불안속에서 밤을 지샜으며 물이 빠지고 아침이 될 때까지 악몽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편 이날 당진시내에서는 당진천 제방 붕괴로 범람한 물이 시장을 덮쳤으며 이 시간이 마침 만조시기여서 물이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해 더욱 큰 피해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진천 범람에다 때는 만조시간

피해당일을 전후한 기상상황이 시시각각 변해 관계공무원들이 대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수해 하루전인 7일 밤 11시를 기해 호우주의보가, 12시를 기해 폭풍주의보가 발효됐는데 피해 당일인 8일 오후 1시경 호우주의보가 해제되어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날 저녁 7시에 호우주의보가 재발효되면서 천둥번개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져 수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밤9시에 호우경보가 발령되면서 물이 차올랐으며 9시 반부터 주민들의 대피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이 시각 석문면 교로리 왜목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했으며 9시40분에는 원당리 산장가든 부근에 낙뢰가 떨어졌다.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당진군은 밤10시에 본청 및 읍면 필수요원들에게 비상근무조치를 내렸다. 9일 새벽 12시 반경 당진천이 범람하면서 주변 상가와 주택가로 물이 밀려들기 시작했으며 군청 대회의실에 18명이 대피했다.
거의 같은 시각 정미면 천의리 시가지가 침수되면서 주민들이 대피했으며 정미면사무소에 30명, 미호중학교에 50명, 영광교회에 30명의 이재민을 수용했다. 1시 25분경에는 한성아파트 뒷편 야산의 토사가 유출되면서 주차해 있던 차량을 덮쳤다.
새벽1시, 군청·면·학교에 대피소동

주말에 엄습한 집중호우로 전국에서 가장 큰 수해를 겪은 당진소식이 연일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고위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일 심대평 충남도지사는 당진을 방문하여 군청에서 김낙성 군수로부터 피해현황을 보고 받고 피해지역인 당진시장과 정미면 봉생리, 천의리 시장, 산사태 현장 등을 방문해 피해주민을 위로하였다.
지난 12일에는 박태준 자민련 총재가 김현욱 의원, 심대평 도지사, 김보성 재해대책위원장 등과 함께 당진을 방문해 김낙성 군수로부터 피해현황을 보고받고 시장에 들려 피해상인들을 위로했다.
김군수는 보고를 통해 한보부도 이후 지역경제가 극도로 어렵기 때문에 수해복구에 필요한 550억원이 반드시 지원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박태준 총재는 “당정협의회에서 이재민 지원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면서 “피해가 심한 충남의 경우 당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처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날 이회창 한나라당 명예총재는 정석래 당진군 지구당위원장, 유한열 충남도지부장, 이우재 의원과 함께 당진을 방문하여 이재민들을 위로했다. 이총재는 군청 회의실에서 김낙성 군수로부터 피해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피해복구를 위해 최대한의 지원이 될 수 있도록 여야를 떠나 국회에서 대책을 세우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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