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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1998.08.31 00:00
  • 호수 238

이책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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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생이 의자에 앉지 못한 것은 치질 때문이 아니었다

" 무결선생의 의자(104쪽)
중학교 국어교사인 박광철 선생은 ‘무결선생’이라 불렸다. 그 반 학생들이 단 한번도 결석을 하지 않았던 것이 이름이 붙은 원인이 아니었다. 결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무새가 단정한 것은 물론, 겸손하고 교양이 풍부하며 사리판단에 정연하고 학생들에게도 헌신적이어서 매를 들어야 할 때 매를 들고, 칭찬에 또한 인색하지도 넘치지도 않았다. 자기의 속내를 털어놓는 데에도 어눌하지 않고 매사에 침착·성실했으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상이 과분하다고 생각하면 한사코 거절할 줄도 알았다. 건방지다는 소리에 괴로워하기도 했으나 웅성거림은 금새 멎곤했다. 그래서 스승의 날 무렵에는 졸업생들로부터 편지가 쏟아지고 일일이 답장하는 일로 5월이 다가는 줄 모른지 1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런 박선생에게 문제가 생겼다. 얼굴에 조금씩 수심이 드리워지더니 급기야 ‘의자에 앉지를 않는 것’이었다. 교실에서는 물론 교무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무회의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의자에 앉아야만 할 때 그 얼굴에 나타난 고통의 흔적이란 언제나 품위있는 미소로 가득했던 종전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급기야 화학선생이 ‘내가 잘아는 외과의가 있는데 치질수술만 백번을 넘겼대요. 방과후에 가 봅시다’ 이렇게 충고한다. 두어달 후에는 정많은 학부형으로부터 ‘엉덩이 부분이 뻥뚫린 의자’를 선물받기에 이르른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듣지는 못했다.
“저는 의자에 앉을 수 없어요. 제가 가르쳤던 제자 하나가 지금 감옥에 가 있는데 그놈을 가르친 제가 어찌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 × ×
도서출판 가서원이 낸 자유에세이집 좥껄껄좦. 이 책속에는 ‘무결선생의 의자’처럼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짧은 글 30여편이 실려있다. 하창수의 글이다. 장편소설 좥들개좦, 좥칼좦로 유명한 이외수의 단칼같이 서늘한 시와 담백한 삽화도 간간이 실었다. 이 책을 보면 우리가 아둥바둥 살아가는 눈앞의 현실외에 삶의 진정한 경계가 어딘가에 따로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곳은 어디일까? 내안에 우주가 있다는데...
이외수 시·그림 / 하창수 글
도서출판 가서원 / 가격 6,800원


······
도인을 산 속에서 찾지 말라
가파른 시간의 산등성이 넘는 동안
머리 위에 하얗게 얹힌 무서리
비록 등꽃무늬 화사한 벽에 똥칠을 하더라도
그 나이엔 모두가 법문이라니
······
버리고 일어서라
시간의 감옥
······
누군가
진눈깨비에 뼈를 적시며
울고 있지만
······
버리고 일어서라
이 세상 모든 길들은
내게서 떠나가는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로 돌아오는 자를 위해서
영원토록
잠들지 않나니
" 「껄껄」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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