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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1998.09.07 00:00
  • 호수 239

“애국가는 조부께서 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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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읍 김웅길씨, 「추강 김인식 선생 애국가 작사 고증」 책자 펴내
‘작자미상’ 애국가 작사자 논란 다시 불당겨

괴 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우리는 늘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애국가를 듣고 또 부르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가사를 누가 지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찾아본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애국가의 가사는 누가 지었는가? 안타깝게도 애국가가 국가로 지정돼 불려지기 시작한지 반세기가 다된 오늘날까지 애국가는 작자미상으로 남겨져 있다.
정부가 건국 50주년을 맞아 범국민 태극기달리기 운동을 벌이는 등 국가상징에 대한 관심이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때 당진읍에 거주하는 김웅길(음악학원 운영)씨가 우리나라 근대 서양음악의 개척자이자 최초의 음악교사였던 추강 김인식 선생(1885~1962)이 바로 애국가의 작사자라고 주장해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인식 선생의 친손자인 김웅길씨는 최근 추강 김인식 선생 애국가 작사자 공인추진위원회(위원장 권혁태 교수, 순천향대 도서관장)를 비롯, 서울대 당진동문회 등 각계의 후원을 받아 ‘추강 김인식 선생 애국가 작사에 대한 고증’이라는 책자를 펴냈다.
총 124쪽 분량의 이 책자에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기를 전후해 각계에서 불려진 30여종의 애국가 가사들과 그동안 항간에서 거론되어온 윤치호 작사설을 근거제시와 함께 반박한 분석자료, 애국가를 자신이 지었다고 직접 증언한 김인식 선생의 일기와 당시의 신문기사, 김인식 작사설을 뒷받침하는 증언들을 상세히 적고 있다.
김인식 선생 애국가 작사설은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애국가 작사자를 규명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을 때 제기돼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당시 작사자로 유력하게 거론된 인물은 바로 윤치호 선생. 유족들은 윤치호 선생이 직접 썼다는 애국가 가사지를 증거로 제시했다. 현행 애국가 가사 전문과 1907년 ‘윤치호 작’으로 쓰여진 이 가사지는 그러나 감정결과 1907년도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고 판명된 데다 철자법도 너무 현대화 되어있어 조작설에 휘말리고 말았다.
유족들은 이후 이 가사지는 1945년 윤치호 선생이 임종하기 직전 가족들의 권유로 썼다고 해명했으나 1945년도에 썼으면서 1907년으로 표기한 것을 놓고 세간의 의문만 증폭시킨채 증거자료로서의 신빙성에 결정타를 맞았다.
바로 그 무렵 생존해있던 김인식 선생이 애국가는 자신이 썼다고 직접 밝히면서 애국가 작사자 논란에 처음으로 불을 당겼다. 당시 김인식 선생은 애국가를 지은 동기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증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교사로 여러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친 김인식 선생은 1908년 진명여교 교사로 재직 당시 학교개교 창립식 때 부르기 위해 애국가를 작사했다고 증언했으며, 김인식 선생의 주장이 서울신문 등 언론에 보도되자 제자들이 신문사를 직접 찾아와 김인식 선생에게 애국가를 배웠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김인식 선생 작사설은 여러 논란의 와중에서 공인되지 못하고 국사편찬위는 작자미상으로 결론을 내려 버렸다.
애국가 작사설의 논란이 다시 일어난 것은 올 초 행정자치부가 건국 50주년을 맞아 국가 상징물에 대한 기원을 밝히는 작업에 들어가면서 부터다. 행정자치부가 애국가 작사자 규명을 위해 용역을 준 국가상징연구회는 8.15 광복절을 앞두고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공청회를 열었다.
김웅길씨에 따르면 이날 공청회는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사 당시 이미 신빙성에 의문을 남긴 윤치호 선생의 ‘자필’ 애국가 가사지가 유력한 증거자료로 다시 제시돼 애국가 작사자로 윤치호 선생을 공개적으로 추인받기 위한 자리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했다는 김웅길씨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갖고 갔던 모든 자료를 내놓으며 김인식 작사설을 강력하게 제시했다.
그 결과 건국 50주년을 맞아 애국가 작사자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던 행정자치부는 결국 애국가는 ‘작자미상’이라는 개운치 않는 결론을 내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고 한다.
애국가 작사자의 유족이라는 명예욕에 앞서 한세기가 가기전에 역사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김인식 선생의 애국가 작사설을 사실로 알리기 위해 뛰어왔다는 김웅길씨는 “김인식 선생이 애국가 작사자로 공인될 때까지 증거자료를 더 확보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김인식 선생이 애국가를 작사했다는 여러 구체적인 자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작사자로 공인되지 못한 것은 권력과 자본의 햇빛만을 좇는 학계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그가 펴낸 김인식 선생 애국가 작사 고증책자는 각계에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실제로 책자발간에 앞서 매스컴엔 김인식 작사설에 대한 보도가 이미 수차례 나갔으며 전국 각처에 발송된 책자를 보고 하루에도 수십통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또한 빠른시일안에 윤치호 선생의 유족측과 각계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청회를 가질 계획이다.
김씨는 올해말 원고 4천매 분량의 김인식 선생 전기를 발간할 계획이다. 애국가 작사와 관련된 모든 자료와 김인식 선생의 일대기, 육필악보 등을 모두 망라한 이 전기가 발간된다면 애국가 작사자로 공인받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한발이라도 앞당기게 될것으로 김씨는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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