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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이 / 국악협회 당진군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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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 한마당에 온갖 시름 날리고
"김덕수패 사물놀이를 보고"

하늘은 마냥 높다. 하늘 따라서 마음도 가뿐히 높아진다. 저 쪽빛 하늘을 바라보며 불과 달포전의 성난 하늘을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올 여름의 폭우는 우리 모두를 숨어버린 희망의 얼굴 저편에서 떠오르는 절망을 공포스럽게 바라보게 했다. 높고 푸른하늘과 만삭된 몸을 풀기에 바쁜 들녘을 눈앞에 두고도 아직 여름의 생채기는 남아 있었다.
그런 마음들의 소리없는 대화였던가. 올해 “상록문화제” 행사는 삼가하는 마음과 함께 접어두기로 했다. 그러나 “상록문화제”는 우리고장의 얼굴이요, 문화의 맥임에 그 전부를 접어두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오히려 수해복구에 흘리는 땀방울을 어루만질 수 있는 절실한 손길이 될지도 모르는데 싶었지만 잔치분위기는 아니다 싶은거였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고통을 아픔으로만, 불행을 어두움으로만 받아들이는 성품이 아니어서 다른 것 다 접어두고라도 신명의 한마당을 열어 서로 힘을 주고 받는 어여쁜 자리를 마련하고자 뜻이 모아졌다.
옛 어른들의 삶을 돌아보면 일과 놀이가 항상 함께 있었다. 모내기 철이면 언제나 들녘에는 풍물이 앞장을 서고 목청좋은 앞소리를 받아 뒷소리를 매기는 사이 힘든 노동은 흥겨운 어깨춤으로 삶의 지난함을 보듬고 넘어갔다. 그 신명 한마당을 불러들임을 굳이 나무랄 사람은 없으리라.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이 있던 날도 비가 왔다. 빗줄기를 보면서 달포전의 폭우에 대한 엷은 두려움과 모처럼 마련한 잔치마당에 구경꾼이 줄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염려는 하나 둘씩 군민회관을 메우는 발걸음에 씻겨져갔다.
앞장서는 “상쇠”의 “국태민안”과 당진군민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덕담과 굿거리 가락으로 길이 열리고 “비나리” 고사떡에는 여느해보다 많은 기원의 손길들이 드리워졌다. 풍물패의 신명이 우리의 시름을 걷어가면서 구경꾼의 신명이 풍물잽이들의 흥을 돋구는 일치가 이뤄졌다. 공연자와 구경꾼이 따로 없는 한마당, 누구 누구를 끌것도 없이 함께 어루어진 뒤풀이에 우리는 여름의 시름을 날려보냈다. 그 속에는 남녀노소가 없었다.
지역에 따라 저마다 특색을 지닌 풍물가락이 있는데 우리 국악협회는 고산초등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이 고장 풍물을 가르치고 있다. 그 아이들은 고대중학교에서 그 몸짓을 성숙하게 한다. 그러나 그후 아이들의 진로는 현재로서는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게 우리고장의 실정이다. 안타까운 일로 생각하고 있는데 김덕수씨의 말은 그 점을 더욱 절실하게 했다.
“문화의 저변확대도 꼭 해야 할일이나 현재는 우리후손들이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맥을 보존·계승시키는 일에 역점을 둘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맥을 이어주실 어른들이 하나 둘씩 우리곁을 떠나고 계시니까요.”
우리지역만의 고유한 가락을 더 늦기전에 찾아내서 올바로 계승시켜야 한다는 진지한 말씀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내게 한가지 기원과 희망이 생겼다. 우리와 만나 우리가락을 익히고 있는 어린이들이 그 맥을 계속해서 이어가기를 바라는 기원이며 그날 공연장에서 만난 나뉨없고 겉도는 기운 하나 없던 신명을 일치한마당을 통해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그 작은 행사가 희망과 용기의 씨앗이 되어주기를, 그리고 그 씨앗이 씩씩하게 자라 내년에는 풍성한 잔치마당으로 “상록문화제”를 열 수 있기를...
주부의 직업에 결손을 남기면서도 풍물과 맺어온 지난 10년 동안의 어려움들이 보람의 보석으로 세공되어진 날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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