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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전해지는 700년 전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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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사랑한 원나라 공주 이야기

 

원나라 공주 고려의 왕비가 되다

노국공주는 고려 31대 왕인 공민왕이 사랑한 왕비이자 원나라 위왕의 딸로 이름은 보탑실리이다. 충숙왕의 차남으로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공민왕은 약10년 동안 원에서 살다가 원나라의 노국공주와 결혼을 하게 된다.

공민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난산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2월16일 '그날'에서 노국공주의 삶과 사랑이야기를 만나보자.

 

공민왕의 정치적 정신적 동반자

공민왕이 노국공주와 고려로 돌아와 왕으로 즉위하자 원나라 풍습을 따르고 있던 변발과 원나라 의복을 금지시키며 원의 세력에 벗어나고자 하는 반원정책의 의지를 세웠다. 당시 고려에서 가장 큰 세력인 원나라 기황후의 측근들에게 연회를 베푼다고 궁으로 불러 친원세력들을 제거하였다. 이러한 공민왕의 반원정책에도 노국공주는 원나라의 공주가 아닌 고려의 왕후로써 공민왕을 지지하며 원나라에 대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또한 반원정책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공민왕을 해치려 할 때 노국공주가 칼을 빼들어 자객들을 막아내기도 할 만큼 몽골여성의 강함과 대범한 모습도 가지고 있었다.

금술이 좋았던 공민왕과 노국공주였지만 8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어렵게 얻은 아들은 낳다가 노국공주가 죽자 공민왕은 밤낮으로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보며 그리워한다. 결국 공민왕은 노국공주를 잃은 충격으로 나라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노국공주의 릉은 황해북도 개풍군에 위치한다. 죽어서까지 함께 하고자 했던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바램이었을까? 고려시대에 왕과 왕비가 함께 묻힌 쌍릉은 이릉이 유일하다. 또한 릉의 안쪽으로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영혼이 만날 수 있도록 통로가 만들어져 있다.

두 사람이 어떻게든 만나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이 보여진다. 비록 원나라의 공주였지만 고려를 사랑했고 공민왕을 사랑했던 여인 노국공주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700년이 지난 지금도 뮤지컬이나 드라마에 등장할 만큼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남겨져있다.

노국공주의 죽음으로 안타깝게 이어지지 못했던 간절한 사랑과 아쉬움 대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계성초 3학년 민세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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