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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살 나이에 시집 낸 할아버지 유윤근 옹 (석문면 교로리 출신, 고대면 당진포리 거주)
80년 인생, 詩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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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로 성공…큰 사고로 죽을 고비 넘겨
위기의 순간 곁을 지켜준 아내에 감사”

 

여든의 나이에 시집을 냈다. 글쓰기를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삶의 풍파를 겪으며 한 줄, 두 줄씩 써내려간 글들이 어느 덧 책 한 권의 분량이 됐다. 그렇게 끄적거려온 글은  삶의 기록이 됐다.

재생타이어 개발해 사업 성공
유윤근 옹은 젊은 시절 인천에서 꽤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군대에서 배운 자동차 정비기술과 더불어 인연의 끈이 이어져 폐타이어를 재활용해 타이어 재생외피를 개발했다. 외국산 뿐이었던 당시 시장에서 국산 재생타이어는 처음이었다. 새 타이어보다 더 오래 쓰는 재생 타이어는 마모가 잘 되지 않아 경비 절감에 도움이 돼 전국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지난 1982년, 공장을 운영하던 중 생산라인에서 부품이 튕겨져 나와 이마를 때렸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가 흘렀다. 정신을 잃은 채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함몰된 이마는 평생의 상처로 남았다. 학창시절 기계체조 선수를 했을 정도로 건강했지만 이후 건강이 악화됐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 글에 담아
1989년엔 신평에도 공장을 차렸지만 3년 만에 후유증으로 쓰러졌고, 고질적인 어지러움증을 달고 살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사업을 접고 아파트 경비원 일을 시작했다. 아내 김순희 여사의 정성스러운 간호로 몸이 회복됐지만 요양이 필요할 것 같아 경기도 이천에 집을 마련하고, 한동안 그곳에서 지냈다. 그리고 5년 뒤인 지난 2013년, 연어처럼 다시 고향 당진으로 돌아왔다.

“처음 글을 썼던 건, 이천에서 생활할 때였어요. 소나무 사이로 붉게 해 뜨는 모습이 너무나 멋진 집이었죠. 어느 이른 아침, 집 앞 호숫가를 산책하는데, 고귀한 자태를 뽐내던 하얀 백로를 봤어요. 문득 아내 같더군요. 때 묻지 않은 순수함, 청순한 백합에 빗대 아내에 대한 시를 쓴 게 첫 글쓰기의 기억이에요.”

부끄러운 글이었지만, 생각을 정제된 언어로 기록하면서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무엇보다도 오랜 투병의 시간동안 곁을 지켜준 고마운 아내에 대해, 그리고 지난 80평생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계속 글을 쓰고 싶었다.

유윤근 옹은 “남부럽지 않게 부유하고 화려했던 날들도 있었다”며 “그러나 그런 삶을 기록하진 않았다”면서 “이번 시집은 늙은이의 신세타령 쯤 된다”고 자신의 글을 소개했다.

거짓 없이 참된 아내
스물 네 살에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군 재대 후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설 명절을 쇠기 위해 석문면 교로리에 위치한 고향집을 찾았다. 선을 보고 가라는 집안 어른들의 말씀을 거역하기 어려워, 음력 초이튿날 대호지면 두산리 아내의 집으로 선을 보러 갔다. 마당에 서 있던 한 아가씨가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식사 후 맞선을 보는데, 아내는 단장도 하지 않고, 기워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선자리에 나섰다.

그런데 그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다. 거짓 없이, 꾸밈 없이, 참되 보였다. 이런 여자라면 평생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나 55년을 살았다. 아내는 여전히 수수하고, 변함없이 참된 사람이다. 유윤근 옹은 “여전히 신혼 때와 같은 마음”이라며 “소꿉장난 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100평 집에서 옥탑방으로
그동안 아내는 사업하는 남편 때문에 참 많이 고생했단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보살펴 주지도 못했고, 알콩달콩 살아왔지만 젊은 시절 깊은 사랑을 주지 못했던 게 늘 마음에 죄의식으로 남았다. 게다가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한 남편의 수발을 드느라 본인의 삶은 챙기지 못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사업의 실패로 100평짜리 호화로운 집을 팔아 부엌 하나 딸린 옥탑방으로 이사했을 때,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아내 때문이었다. 병든 몸을 이끌고 들어온 좁은 방에서 생을 마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세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 시도했지만, 번번이 아내 때문에 다시 살아냈다. 아내는 빈 몸으로 쫓겨 나온 상황에서도 한 번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버팀목이 돼주었고, 어려운 상황 속에 삼남매를 착실하게 길렀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쓴 시가 <옥탑방>이다. 지금도 시를 읽을 때면 마음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치솟는다. 그는 “황혼을 넘어 저 세상으로 갈 때까지 더욱 깊이 사랑하려 한다”고 말했다.

“사업의 실패로 / 좋은 가옥 행복한 가정은 저 멀리 / 옥상 위 옥탑방에서 괴로워하던 / 사랑하는 아내는 / 그래도 나를 보듬어 주었지 // 내 공장에서 사고로 / 강철 같던 건강 / 하루만에 무너져 옥탑방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던 / 사랑하는 아내는 / 그래도 나를 웃음으로 감싸주었지 // 모든 생활에 힘이 들어 / 생의 마감 길을 걸으려 할 때 / 옥탑방 작은 상에 마주앉자 / 사랑하는 아내는 / 나를 삶의 길로 인도해주었지”

나를 깨우는 글쓰기 교실
유윤근 옹은 최근 새마을문고 당진시지부(지부장 김병노) 삼다독서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지은 ‘삼다’라는 이름은 △부모에게 자식이 효도하는 아름다움 △부부 간에 서로 사랑하고 믿고 양보하는 아름다움 △친구와 지인이 서로 의지하며 자주 만나는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가 현재 살고 있는 고대면 당진포1리에 지어진 주민들의 사랑방 이름도 ‘삼다관’이다.

유윤근 옹은 새마을문고 당진시지부가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독서동아리 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나를 깨우는 글쓰기 교실’에 참여했다. 당시 강사로 나선 김선순 지혜의숲 당진센터장의 도움으로 그간 써놓은 글들을 엮은 시집 <심심해서>를 발간하게 됐다.

“한 자, 한 자 글을 써내려 가면 어지러웠던 머리가 맑아지고, 인생을 돌아볼 수 있어 좋아요. 좋은 기회를 통해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돼 참으로 감사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고 싶어요. 아팠던 일들을 서로 보듬어 가면서 함께 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아름답게 만났듯, 갈 때도 곱게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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