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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7.03.31 00:00
  • 호수 168

’97 문화유산의 해 - 당진의 문화재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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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풍체에 깃든 고려인의 정성
신암사 금동좌불상-국가지정보물

송악면 가교리 능성구씨 종중 사찰인 신암사에 봉안되어 있는 금동좌불상으로 군내 국가지정보물중 가장 늦은 지난 89년 보물로 지정돼 뒤늦게 빛을 보게 되었다.
신암사는 고려 충숙왕 때 능성구씨 4대손인 구예가 낙향하면서 창건한 사찰로 그때 본존불로 봉안된 것이 이 금동좌불상이라고 전해진다. 전체높이 88cm, 떡벌어진 어깨와 묵중한 아랫배, 탄력있는 무릎의 근육묘사등 전체적으로 위풍당당하고 남성적인 멋이 한껏 풍겨나고 있다.
서산 문수사 불상ㆍ청양 장곡사 불상과 전체적인 불상형태가 비슷하나 젖가슴이 쳐진 표현은 장곡사상 계통으로 알려진다. 일정한 두께로 표현된 불의(佛衣)와 나비형의 띠매듭등 정성이 많이 느껴지는 작품.
한편 이 불상의 유래에 대해서 능성구씨 종중에서는 인도에서 모셔온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4대손 구예의 부인이었던 아주 신씨가 남편이 사망한 뒤 사찰을 짓고 인도에서 건너온 이 불상을 모셔 두었다는 것.
종중들은 보물로 지정되던 89년 당시까지 이 불상에는 인도어로 쓰여진 복장물(불상의 제작연도와 시주자 명단등을 적은 쪽지)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복장물은 불상의 관리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해 국가보물로 지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당시 종중들이 불태워 없애 버렸다고 한다. 이 불상이 뒤늦게 보물로 지정된 것도 종중들의 반대가 심했던 것이 주요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암사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종중소유 사찰이라는 것이 이색적으로 신도들도 대부분 능성구씨이다. 지난해 3천만원을 들여 보수했으나 안타깝게도 바로 앞으로 서해안 고속도로가 뚫릴 계획이어서 종중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불상을 뵈러오는 외부손님들을 위해 주차장등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과제로 남겨져 있다.

도움말:구자생(송악면장), 문체부 문화재 전문위원 보고서(1988년)
사진:안승환(한터우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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