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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1997.03.31 00:00
  • 호수 168

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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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구/본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0457)363-1991

장경선 옹(합덕읍 중동)
일을 극복하는 데에는 용기로, 일을 다스리는 데에는 지혜로

어떤 사람에게 아들 둘이 있었는데 그중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재산 가운데 제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들에게 살림을 나누어 주었더니 며칠후에 작은 아들은 제 몫을 다 거두어 가지고 먼곳으로 떠나갔다.
그는 거기서 방탕한 생활을 하여 자기 재산을 낭비했다. 그가 모든 것을 탕진했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는 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 고장에 사는 어떤 사람에게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그를 자기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했다. 그는 돼지가 먹는 가륨(가축사료로 사용하는 나무열매-중동지방) 열매로 배를 채워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주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는 제 정신이 들었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들은 빵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죽게 되었구나.” 그는 일어나 자기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다.
그가 먼거리에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를 알아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서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는 가락지를 끼워주고 발에는 신을 신겨주어라.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끌어내어 잡아라. 먹고 즐기자. 사실 나의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고 내가 잃었다가 찾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큰아들은 들에 있다가 돌아오면서 집 가까이 이르렀을 때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하인 하나를 불러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하인은 그에게 “당신 아우가 돌아와서 당신 아버지께서 살찐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그를 성한 몸으로 맞이했기 때문이지요”하고 말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꾸하며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새끼 한마리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집어삼킨 아버지의 작은아들이 돌아오니까 그에게는 살찐 송아지를 잡아주시다니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며 내 것은 모두 네 것이다. 그런데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찾았으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단다” (신약성서 루가 15장에서 발췌)
요즈음 두서너명만 모여 앉으면 한보와 소산(小山)에 얽힌 얘기로 해가 저물고 있다. 그것도 몇달째이다. 나라는 위기에 처했으며 국난이라고까지 스스럼없이 얘기가 튀어나온다. 우리는 이제 바른정신으로 탕아(蕩兒)의 아버지의 마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해하면서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구해야 할 것이다.
고장난 기계는 수리하고 마모가 된 것은 새것으로 바꾸고 부서진 곳은 속히 고쳐야 될 것이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두배 세배의 힘을 쏟아 열심히 일해야 된다. 한보나 소산 건들은 그들의 죄를 묻고 다스릴 곳이 따로 있으니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
위기에 처한 이 나라의 거대한 배를 침몰시켜서도 파손 당하게 하여서도 절대 안된다. 배를 다시 출항시켜 순항의 항로로 돛을 올려 앞으로 힘차게 나가게 모두 힘을 모아야 될것이다.
장경선옹!
장경선씨는 내년에 회혼년(결혼 60주년)을 맞는 83세의 노옹으로 풍부한 감정을 지니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은 수시로 변하게 된다. 때로는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감정의 기복이 심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사람은 공감때문에 산다”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우리모두는 스스로가 감지못하는 정의교류가 흐른다. 우리는 이것들을 소중한 마음의 자세로 갖춰야 할 것이다. 특히 어려운 이 나라의 난국을 이겨나가기 위해서이다.
장경선옹은 북한땅, 황해도 은율군 이조면 태생이다. 남부럽지 않은 농가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살았다. 북한에 사회주의가 도입될 때도 민주주의를 신봉하여 민주당(당시 북한에는 노동당, 청우당, 민주당이 있었다) 당원으로 활동했다. 그런 연유로 핍박이 심했으며 고난을 무수하게 겪었다.
전쟁통에 부인과 아들 형제를 이끌고 남한으로 피신했다. 빈손으로 피난하였으니 살림은 말이 아니었다. 피난민 수용소를 옮겨다니다가 합덕읍 도곡리의 난민촌에서 정착을 했다. 열과 성을 다하면서 삶을 살았고 아들 형제와 딸 하나를 더 두게 되었다. 오늘날 5남매는 각자의 길을 따라 각처에 흩어져 제나름의 자리에서 건전한 생활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해관계를 떠나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어진마음으로 대한다. 왜냐하면 어진마음 자체가 내게는 따스한 체온이 되기 때문이다.” (파스칼)
장경선옹도 지혜롭게 오늘날까지 일관하면서 살았으며 남은 여생도 그렇게 살것임을 확신시키는 삶을 산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장경선옹의 삶, “인자는 반드시 용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용맹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극복하는 데는 용기로 하고 일을 다스리는 데는 지혜가 필요하다.”
장경선옹은 이 어려운 시국을 각자 지혜롭고 슬기롭게 생각하며 진정한 용기를 갖고 헤쳐가야 된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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