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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신문의 날 기획 | 신문을 사랑하는 남자 최병부 씨(당진행정동우회 부회장)
‘기록 수집가’…40년 간 신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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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 신문 구독·매일 아침 신문 읽기로 하루 시작
전화일기 및 가계부·차계부 등 기록 습관
“종이신문 쇠퇴하는 현대사회 안타까워”

신문은 긴 역사 속에 함께 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소식을 전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종이신문은 대중들에게 점점 잊히고 있다. 종이신문 보다는 새롭게 등장한 컴퓨터와 TV 그리고 스마트폰 등을 통해 소식을 접한다. 하지만 아직도 신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 어느 매체보다 종이신문이 좋다며 평생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그는 당진군청에서 오래 근무한 퇴직 공무원이자 당진시대의 오랜 독자이기도 한 최병부 씨(현 당진행정동우회 부회장)다.

하루의 시작 ‘신문’
최병부 씨는 신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6시30분에 기상해 그날 배달되는 일간지 등을 펼친다. 한 신문을 읽는데 20여 분이 걸린다. 그는 일간지를 포함해 지역신문까지 8가지를 구독하고 있다. 그날의 새로운 소식을 꼼꼼히 읽으며 신기한 소식이나 좋은 사진, 혹은 마음에 와 닿는 글이 있으면 스크랩을 한다. 스크랩도 종류마다 다르다. 사건·사고 기사를 스크랩한 ‘어머나! 세상에 이런 일이’와 전국 곳곳의 좋은 관광지 사진을 담은 ‘관광 사진’, 그리고 칼럼, 지역소식 등으로 나눠 수집한다. 이렇게 40여 년 간 모아 놓은 신문이 방 한 쪽 벽 책장을 가득 채울 정도다. 여기에 본가인 태안 집에도 한 가득이다. 그는 공직생활로 인해 이사를 다니며 잃어버린 것도 꽤 많다며 아쉬워했다. 최 씨는 “다른 것은 몰라도 신문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며 신문 ‘사랑꾼’의 면모를 보였다.

첫 게재된 나의 시
처음 최 씨가 신문을 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태안군 남면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남면국민학교에서 어린이신문인 <새 벗>을 접하게 된다. 신문을 구독할 형편도 아니었고, 시골 마을에서 신문을 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신문을 본 게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그 때 최 씨는 본인의 글도 다른 사람이 신문을 통해 봤으면 하는 마음에 숙인 벼 이삭을 보고 쓴 자작시 <가을 하늘은>을 투고해 신문에 게재됐다. 그는 “신문에 자작시가 담긴 것을 보고 너무 감격스러웠다”며 “내가 쓴 시가 신문에 날 정도로 잘 썼구나라는 생각에 자부심도 들었다”고 말했다.

스크랩의 시작
그 후 대전에서 대학교를 다니며 본격적으로 신문을 접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스크랩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처음 스크랩한 1970년 4월 24일 자 <봄비 맞으며 첫 모내기> 기사가 아직도 남아있다. 최 씨는 “이른 날에 모내기 한 것이 너무나 신기해 기사를 스크랩 했다”고 말했다. 대학생이었던 그는 대전일보를 비롯해 학교신문은 물론 시가 많이 게재됐던 영자신문을 구독하곤 했단다. 대학시절 영자신문을 보며 좋은 시를 스크랩 한 것 역시 아직도 남아 있다.
“시를 좋아해요. 신문에서 좋은 시를 만나면 더 반갑죠. 아직도 영자신문에 게재된 <밤은 천개의 눈물>이라는 시가 남아 있어요. 그 외에도 <벵갈만의 참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란 기사를 보고 감명 깊어 스크랩 해놨어요. 간직하고 있는 기사를 보면 흐릿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요.”

당진시대와의 인연
1978년 충남도립유성종축장에 입사한 최 씨는 34년 간 공직생활을 했다. 그 중 1995년부터 2012년까지 17년 간 당진시에서 근무하고 퇴직했다. 처음 당진군청으로 발령받아 당진을 찾았을 때 접한 것이 바로 당진시대였다. 그는 “당진시대가 다른 신문에 비해 글도 간결해 보기 좋았다”며 “다른 지역신문에서 읽기 어려운 내용을 상세하게 파헤치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또한 최 씨는 꾸준히 당진시대에 투고하고 있으며, 글이 게재될 때는 스크랩과 함께 신문 5부 정도를 구입해 따로 보관한다. 최 씨는 “쓴 글을 혼자서만 보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글이 게재됐을 때 주변으로부터 ‘글 잘 읽었다’는 연락을 받으면 기분 좋다”고 말했다.

전화일기로 하루를 명확히
또한 최 씨는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며 1995년부터 ‘전화일기’를 쓰고 있다. 최 씨만의 일기 방법인 전화일기는 하루동안 있었던 통화 내역을 정리하며 이름과 번호를 쓰고 그 옆에 간단히 용건을 남긴다. 어머니와 아내 등 가족은 물론 친구, 이웃과 나눈 전화 기록까지 적는다. 그는 “전화일기를 쓰며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명확해진다”며 “또한 사람들과 약속한 것을 잊지 않고 지킬 수 있는 것 역시 통화 내용을 기록하는 것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신문을 통해 누군가가 남긴 기록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저 역시 기록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요. 전화일기 외에도 자동차와 관련된 내용을 적은 차계부와 가계부도 적죠. 그래야만 저라는 사람이 명확해지고, 또 지나간 제 일들을 남길 수 있잖아요.”

“공정보도 중요”
요즘 신문시장이 쇠퇴하고 있는 가운데 최 씨 역시 신문이 점점 잊혀 가는 것이 안타깝단다. 그는 “종이신문은 다른 매체와 달리 한참 지난 후에 다시 볼 수 있어 좋다”며 “하지만 신문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외받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신문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신문이 올바른 소리를 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에는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럴 때 신문이 옳은 소리를 해줘야 사회가 잘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당진시대도 계속해서 정확한 보도, 공정보도를 해줬으면 합니다.”

 

·1953년 충남 태안군 출생
·<한국공무원문학>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수필집 <하늘엔 청운이>, 자서전 <인생60 공직30> 출간
·현 당진시행정동우회 감사
·현 당진문화원 대의원
·현 당진아동센터 후원회 이사
·현 한국공무원 문학협회 이사
·현 (사)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 사무국장
·현 서산시 석남동 주민자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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