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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1997.09.22 00:00
  • 호수 192

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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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구/본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0457)363-1991

신 효 철 / 한서대 여성교양대학 학생회장
주부가 향기 있으면 집안에 평화가 있다

국어사전은 청렴(淸廉)이라는 어휘를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뜻함”이라고 쓰고 있다. 그만큼 고상하고 아름다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들 청렴이란 말을 쓰면 먼저 가난을 머리속에 떠올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융통성 없이 옹색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치부하기가 일쑤다. 그만큼 현실생활의 가치관이 뒤바뀌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청빈(淸貧)이란 말이 따로 있다. “너부 청렴하여 가난하다”는 뜻이다.
“굶주린 자들의 성녀” “임종자의 성녀”로 불리는 “마터 테레사” 수녀님이 9월 5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난하고 굶주린 자가 없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마터테레사 수녀는 1946년 인도의 칼카타에서 첫 소임을 시작했다. 거리에는 빈민들이 우글거리며 그 자리에서 굶어죽고 죽어가는 광경을 눈으로 체험하게 된다. 굶어 죽어가는 그들을 위해 5척 단신의 마터테레사 수녀는 자기몸을 던져가면서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또 임종하는 자에게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주면서 죽음을 돕기 50여년을 한결같이 하루같이 사랑을 베풀었다.
87세의 고령에도 영면할 때까지 봉사와 사랑을 쉬지않고 실천하다 가셨다. 이런 마터테레사 수녀를 일찍부터 성녀라 불렀으며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마터테레사 수녀는 평화상 수상석상에서 연설중 다음과 같은 감동스러운 말씀을 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배고프고 헐벗고 집없는 사람과 불구자, 맹인, 나환자, 아무도 원하지 않고 사랑하지도 않으며 돌봄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에 짐이 됐던,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기피했던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받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마터테레사 수녀는 모름지기 1천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하는 단 한명의 대성녀로 다시 우리곁에 탄생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서로 믿고 의지하고 돕고 사랑하면서 사람답게 살기위해 서로가 서로를 찾아서 만난 것이다. 이렇게 만난 우리들이기에 사람답게 살 수 있으려면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신효철씨!
우리가정에서 꽃이 있는 집과 꽃이 없는 집은 겉으로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질에 있어서는 하늘과 땅만큼 현격하게 차이를 느낀다. 그 가정안에 꽃이 있는 가정을 보면 그 집의 구조물이 어떻든간에 친밀감이 떠오르며 그 가정주부의 꽃다운 마음씨가 엿보이는 것이다.
모든 가정의 중심은 여성, 즉 주부에게 있는 것이다. 그 중심적인 주부가 꽃이 있는 집과 같이 아름답게 향내가 풍기며 평화롭고 아늑한 집안을 만들 수도 있고 만일 중심적인 주부가 흔들리게 되면 그 집안은 별볼일 없는 가정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상례이다.
우리고을의 대개의 주부들은 전업주부로서 틈틈이 농사를 돌보며 가정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한서대 여성교양대학(1년과정) 학생회장으로 피선된 신효철씨는 “21세기의 길목에 들어선 지금, 정보화사회에 가정주부들도 바르고 빠른정보를 얻는 자기교육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충실한 자기교육이 이루어짐으로써만이 올바른 자녀교육도 할 수 있고, 또 내조도 충실하여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참된 내조자로서, 동반자로서의 몫을 다하게 될 것이며 튼튼한 가정을 세우게 된다”라고 하였다.
근래에 와서 공공단체나 사회단체에서 주부들을 위한 교양강좌가 단기적으로 곳곳에서 열린다. 그 강좌 개최의 목적인 바가 어디에 있던간에 크게 바람직한 일인 것이며 큰 몫을 다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눈으로 미래지향적인 머리로 넓고 길게 바라볼 때 단기적인 교양강좌로는 빈자리를 메꾸기에는 비전문적이고 허술한 데가 많음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종합ㆍ검토하여 합덕의 몇몇 사람들이 한서대학교의 합덕교육원을 유치하게 된 것이다.
수준이 있고 질적인 면에서 대학교의 학사과정을 자리를 옮겨 개강하게 되었음으로 많은 여성지도자들이 시간과 돈을 뛰어넘어 교양대학의 교육을 이수하고자 등록을 하여 새로운 각오로 늦깎기 대학생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 것이다.
신효철씨는 82년도 공립으로 세운 “버그네 유아원”의 초대원장으로 임명돼 오늘까지(지금은 어린이집) 재임하여 많은 어린이들을 훌륭하게 자라게 하였다. 또한 보육교사들을 배출시켜 당진에 “대건어린이집”과 합덕 “은빛어린이집”의 원장 선생님들도 이곳 보육교사 출신임을 모두 자랑으로 생각한다.
신효철씨는 여성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아 92년도 여성유권자연맹 당진지회를 창립하였고 93년도에는 여성단체협의회장도 맡아 활약한 바 있다.
신효철씨는 앞으로 여건이 주어지면 노인들을 위한 봉사단체와 또 그분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자신들의 존엄성이 존중받는다고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성녀 마터테레사 수녀님의 생전의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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