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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1.02.19 00:00
  • 호수 358

[평택을 배운다2]전향적인 공직사회와 사령탑 김선기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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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특집기획
평택을 배운다Ⅱ

[2] 전향적인 공직사회와 사령탑 김선기 시장
배우는 공무원, 솔선하는 시장

< 글 싣는 순서 >
1 평택항 개발의 진행과 그 원동력
2 전향적인 공직사회와 사령탑 김선기 시장
3 헌신적인 지구당과 정치지도자
" 정장선 국회의원과 이계석 도의원

1) 달려갈 목표가 있는 행복한 시공무원들
2) 해양연구기관 찾아다니며 배운 ‘항만의 기적’
3) 가장 중요한 것은 “단체장의 의지입니다”
4) 김선기 시장 인터뷰

1) 달려갈 목표가 있는 행복한 공무원들

경기도 평택시 비전동에 위치한 평택시청. 평택군과 평택시, 송탄시가 통합되어 만들어진 통합 평택시의 35만 인구를 책임지고 있는 곳이다.
지난 1995년 3개 시·군이 통합되면서 이곳 비전동으로 옮긴 새청사는 평지보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 전망이 시원하고 주차장 또한 넓다. 평택시의 외곽인 이곳은 시청 청사 이전과 함께 새로운 도심으로 주변이 정비되어 가고 있다.
평택시민신문 김기수 편집국장의 안내로 시청 문화관광과를 들러 다음날 김선기 시장과의 인터뷰 일정을 확인하고 항만물류과로 이동했다. 마침 이날은 청내에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어서 부서마다 무척 혼잡했으나 민원인의 한사람인 다른 지역신문의 기자를 민망하게 혼자 놔두지는 않았다. 일부러 친절을 보이기 위해 애쓰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지만 민감한 이웃도시에서 온 방문객에게 애써 냉담한 척 하지도 않았다. 적극적이고 솔직하게 당진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으며 거부적이기 보다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친절하고 취재에도 협조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활기에 차 있었다.
항만물류과 문 옆에는 <평택항활성화추진기획단>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다른 부서에 비해 훨씬 넓어 보이는 항만물류과는 갖가지 칼라 도면들로 빽빽했다. 모두 평택항 개발과 평택항 배후지 개발에 관한 것들이었다.
항만물류과 역시 활기에 차 있었다. 희망이 있다는 것, 달려갈 목표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평택시 공무원들은 행복해 보였다. 행복과 의욕에 차서 일하는 공무원을 둔 평택시민 역시 행복할 것이었다. 항만과가 바로 시청의 활기가 솟아나오는 원천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과연 그 희망을 만들어낸 사람, 그 목표를 세운 것이 누구인가 대단해 보이기만 했다.
항만물류과 이상현(사진) 과장과 담당 윤중석(사진)씨가 맞아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항만 관계 일로 얼마 전에 당진군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당진항 분리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가 매우 높다고 부군수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이상현 과장은 지난 1월31일 이필운 부시장과 이상기(사진) 항만국장과 함께 이미 당진군을 다녀왔노라고 했다. 양쪽 자치단체의 민감한 관계 속에서 먼저 상대편을 만나러 나선 곳 또한 평택시라는 사실에 이번에는 주눅까지 들었다.
당진항 분리를 위해 속이 타는 쪽은 솔직히 우리 당진이 아닌가. 이사람들의 적극성은 어디까지인가. 더구나 이곳 평택시에서 시간을 보낸 만 이틀동안 누구의 입에서도 당진에 관한 감정섞인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며 “이웃, 공존, 공영, 상호이익”이라는 말의 세례에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당진군의 이익”이라는 것의 밑바닥에는 과연 “상호이익과 전체의 이익”이라는 성숙한 복선이 깔려 있었던가. 그동안 일을 과감하고 용단있게 추진하지 못한 까닭은 이런 거시적인 통찰 아래 떳떳하고 당당하게 목표와 비전을 세우는 일이 우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원칙이라고 한다면 우리 당진군은 지금도 무원칙 위에 서있다.


2) 해양연구기관을 찾아다니며 배운 ‘항만의 기적’

이상현 과장에 따르면 항만개발 참여를 희망하던 민간투자자들이 1997년 이후 대거 투자를 포기하면서 인천항과 광양항 등 대항(大港)들은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활발한 벤치마킹에 나섰다. 막 항만에 눈을 뜬 평택시도 기로에 놓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때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로를 찾아 나선 것이 결국 평택시에는 전화위복과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해양수산부 산하의 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을 찾아다니며 항만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해야 항만을 개발할 수 있는지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고 각종 연구 용역을 의뢰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항만에 대한 마인드를 가져나가기 시작한 것이죠. GDP의 40~50%를 항만이 차지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결론은 우리도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역경제에 대한 위기의식과 평택시의 활로를 항만에 걸겠다는 목표의식이 일치하면서 평택시는 1997년 공업과에 항만계를 신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항만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점차 높여나갔다.
2000년 9월에는 급기야 항만물류과가 독립부서로 자리를 잡아 지금은 항만정책팀, 항만지원팀, 물류지원팀, 투자유치팀 등 4개팀으로 구성되었다. 아직 정식 가동되지 않고 있는 투자유치팀은 전문인력을 아웃소싱할 계획이다. 현재 항만물류과에서는 세팀 15명이 항만업무를 위해 뛰고 있다.
1999년 7월 이 부서로 부임한 이상현 과장은 그동안 일본과 중국사이를 다섯 번이나 왕래했으며 김선기 시장과 함께 수도 없이 해양수산부를 방문했다.
“우리가 가면 또 왔느냐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여기에 중앙인맥과 파워를 가진 임창열 도지사와 경기도가 뛰어들어 저희 시 이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해에 거둔 성과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관세자유지역의 조건을 완화한 것이다. 종전의 기준에 따르면 관세자유지역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1)육상구역과 배후지 면적이 100만㎢ 이상이어야 하고 (2)화물처리 능력이 연간 1천만톤 이상이어야 하며 (3)컨테이너 정기항로가 개설되고 5만톤급 이상 컨테이너 선박이 접안가능해야 했다.
그런데 경기도와 평택시, 그리고 그곳의 정치인들은 세번째 조건인 입항선박 규모를 3만톤급으로 완화 조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해양수산부 차관급 회의가 세 번이나 연기되었다고 한다.
이중 두번째 요건, 즉 연간 화물처리능력은 기준에 다소 못미치지만 금년 6월말이면 서부두 7개선석 중 정부재정투자로 3만톤급 2개선석이 완공될 예정이기 때문에 금년 하반기부터는 1천만톤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평택시는 이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관세자유지역 지정을 추진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적어도 평택시청에서 항만개발 지원을 위해 이처럼 과감한 돌파력을 제공하는 힘은 무엇인가. 그것이 어떤 인물이라면 그 사람은 누구인가.


3) 가장 중요한 것은 “자치단체장의 의지입니다”

인터뷰에 합류한 이상기 항만경제국장은 “항만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막연한 우문(愚問)에 짧고 명쾌하게 답했다.
“그것은 자치단체장의 의지”라는 것이다. 평택시의 경우 시장의 의지와 결단력,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는 성실성이 항만지원체계를 확대해가는 추동력이라는 것이다.
이상현 과장의 견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김선기 시장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때때로 김선기 시장의 주문에 따라 검토 연구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적중하는 것을 보면 자신들보다 앞서간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시장의 의지만으로 일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는 ‘배우고 익히면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동반노력이 있었다. 국장에서부터 최일선담당까지 관련세미나가 있을 때마다, 관련연구서가 나올 때마다, 관련인터넷 사이트가 나올 때마다 보고, 듣고, 익히려는 노력이 있었다. 담당 윤중석씨는 “지난 2~3년간 엄청나게 공부를 해야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 자신도 겪었지만 항만이 지정된다고 그것이 곧 개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주체의 개발이 실제 가동되기까지는 해당지역의 자체적인 노력과 촉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항만경제국장 이상기씨의 말이다.
평택시와의 만남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당진항 지정 자체가 아니라 당진항 지정 이후의 항만개발 청사진과 그것이 지역경제와 어떠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국가의 항만경쟁력을 높여줄 것인지를 연구하고 제시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역으로 당진항 지정을 위한 첩경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땅히 그것은 지역의 살림을 책임진 광역·기초단체의 몫일 것이다.


김 선 기 시장 인터뷰
공무원들이 입 모으는 “청내 항만연구의 사령탑”

김선기(50세) 평택시장을 만난 것은 평택을 방문한 이틀째의 일이었다. 좀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바쁜 김선기 시장의 일정에 맞추어 일부러 다시 평택을 찾은 것이었다. 이계석 경기도 도의원을 만난 것도 이날이었다.
평택시 공무원들이 그토록 칭찬해 마지않는 김선기 시장을 꼭 만나보고 싶었다. 인터뷰에 앞서 비서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어제 막 자리를 옮긴 비서실장과 공보계장이 인터뷰 내용에 대해 적잖이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견해를 피력하는가 하면 양쪽 자치단체가 서로 다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자극이 되지 않도록 거슬리는 질문은 피해달라고 점잖게 주문도 해왔다. 평택시 모든 공무원의 의식은 평택항으로 통하는 것 같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행정자치부 사무관과 경기도 기획관을 역임한 김 시장은 고향인 평택군에서 마지막 관선군수를 지내던 중 3개 시·군 통합과 함께 민선자치단체장에 출마해 당선된 사람이다.
행자부 사무관 시절 공기업을 담당한 경험과 감각, 그리고 인맥을 통해 청내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항만에 대한 발상을 전환하고 스스로 항만마인드 확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공무원들이 인정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과 감각, 인맥은 따지고 보면 적극적이고 시기적절한 지역개발 정책과 목표 수립의 의지가 먼저 섰기 때문에 활용될 수 있었던 수단들이다.
이점은 김시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면 확인할 수 있다.
“평택시에서 항만의 전기라고 하면 대략 세가지 정도를 들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95년 통합평택시라는 새로운 체제 아래서 통합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항만이 검토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지리적으로 수도권 남부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중부권을 포괄하고 있다는 장점을 살려 새로운 물류중심지로 부상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의욕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90년대 중반의 국제화 붐 아래서 일본, 중국을 다녀보며 항만의 중요성을 확인한 것을 계기로 우리 평택을 동북아시아 무역물류의 거점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거창하게 들릴 법도 한 이런 목표를 귀기울여 듣게 되는 것은 지금 평택이 그것을 차근차근 현실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항만물류과 사무실처럼 시장실에서는 여러가지 이동식 도면들이 눈에 띄었다. 언제든지 꺼내어 설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김선기 시장은 최소한 세개의 도면에 대해 차근 차근 설명해 주었다. 북극이 아래로 오도록 세계지도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평면도는 적도의 북쪽에 위치한 한반도가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역동적인 느낌을 주었는데 한국항만의 세계화 안에서 평택항의 자리를 매김하는 도면이었다.
항만의 개발과 배후물류기지 개발, 정부계획보다 10년이나 개설을 앞당긴 평택항 연결철도와 동서고속도로 등 인프라 구축 계획을 소상하게 정성껏 설명하는 김시장을 보며 성실하고 집요한 로비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공무원들의 칭찬을 전하자 김시장은 손을 내저었다. 오히려 부서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통해서 항만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스로 공부를 한다는 점과 몇몇 관계자를 통해서 스스로 정보를 얻는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김시장은 자신 뿐만 아니라 시 공무원사회 전체적으로 연구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늘에 오기까지 김시장이 먼저 담당공무원들에게 내린 지시는 ‘광양시에서 배워오라’ ‘중국에서 배워오라’였다. 최근에는 중국과의 실제 교역을 앞두고 직원대상의 중국어 교육도 실시했다. 역시 인력관리는 항만물류과에 중점을 두고 있노라고 했다.
“평택은 이제 시작입니다. 하지만 이제 항만관련 산업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물류창고들이 지어지면 세수입도 늘겠고 지역경제에 따르는 파급효과가 커지겠죠. 당진군과도 각별한 이웃으로서 항구의 발전을 통해 공영발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시장은 두 자치단체 간에 자극을 피하기 위해 대단히 신중을 기했으나 당진항 분리에 대해 전혀 언급을 피하지는 않았다.
“서두를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관세자유지역 지정 등 항만전체의 발전이 새로운 궤도에 오른 뒤에 거론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편이 함께 발전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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