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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9.03.22 00:00
  • 호수 266

[건축문화의 해 기행수필]-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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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와 함께 사는/영탑사 유리광전 기둥

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 1 - 바위와 함께 사는/영탑사 유리광전 기둥

날씨에 뜨뜻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작업실에 그냥 박혀 있을 수가 없어 주섬주섬 카메라를 메고 나서본다. 특별히 갈 곳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다. 몇 년전 영탑사 공부를 하러 다닐 때 그 아랫동네 노인내외분에게서 칠층석탑에 대한 귀동냥을 하다가 끼니때가 되어 맛있는 된장국 점심을 염치없이 얻어먹은 기억이 슬쩍 났다. 그 집 바깥노인 김씨는 젊을 적에 목수일을 하던 분이다. 이런 인연으로 가끔 된장국 생각이 나면 김 노인 생각이 났는데 오늘은 그 된장국이나 어떻게 해볼까 해서 발길을 잡는다. "염감님 계슈, 저 왔씨유." 빈집 같이 조용하다. "어! 누구랴. 이-잉 안씨 왔네. 웬일이랴." "된장 아직 남었남유." "팔자 좋우쿠먼. 무슨 된장국여. 여기 영탑사 아름드리 참나무 죄다 비어 제꼈는디." 절에나 올라가 보자구 허신다. 참나무들이 크고 작고 할 것없이 바닥에 허옇게 눈을 뒤집어 쓰고 자빠져 있다. 김씨 노인이 잘 나오지도 않는 허가래침만 뱉어대는 걸 보니 심사가 심히 사나운 모양이다. 우리 참나무는 집을 짓는 재목이나 다른 물건을 만들지 않고 주로 땔감으로만 썼다고 한다. "영감님, 저 절 집기둥은 왜 저렇게 길고 짧고 하게 세웠대유." "이-잉. 우리 곰보선상님헌테 배울적에 집자리는 요새처럼 기계로 푹푹파서 터를 고르지 않는거라고 허셨어. 꼭 그 자리에 집을 않쳐야만 한다면, 바위가 있으면 바위하고 집하고 어우러지게 서로 등을 기대듯, 팔을 얹은 것 같이 서로 사는 거랴." 참 기가 차다. 바위하고 어우러져 살다니.... 쫓아내면 될껄. 아마도 장비나 기술이 없었겠지.... 그런데 아니란다. 같이 사는 거란다. 집 짓는다고 산이며 나무며 동이며 죄다 끼부수고 갖다 버리는, 요즘 우리로선 감히 공감하기 어렵다. "그러니께 이 절집 뒷기둥은 석자도 안되고 앞기둥을 열자가 넘어. 중간기둥은 여섯자나 될른지. 하여튼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짜맞추어서 지은 거란 말여." 이런 집이 많지는 않은데 그런 집 짓는 생각의 바탕위에 우리집들이 치어졌단다. 집 구석구석에 그 터한 우리들의 마음이 베어 있어서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며 또 헛 가래침을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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