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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9.04.19 00:00
  • 호수 270

건축문화의 해 기행수필-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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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짜기와 우리들의 집짓기

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 3 - 삼베짜기와 우리들의 집짓기

여자친구 중에 한국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파리에 가서 고 건축 인테리어를 공부하는, 아담하고 나이 먹은 독신여인이 있다. 좋은 여자친구와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보고 어떤이는 입을 삐죽이며 흘겨보고, 다른 이는 한없이 부러운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상관없이 즐겁기만 했다. 그녀에게서 예술 본고장의 냄새를 흠뻑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문화를 머리에 떠받들고 사는 그들 유럽사람, 사회, 토양의 풍요로움을 이곳 당진 구석에서도 꿰뚫어 볼 수 있는 색깔있는 독신 여인의 마음과 고뇌를 주고 받을 수 있으니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지난 겨울 방학 때 귀국한 그녀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내게 전화를 걸어 당진에서 삼베 짜는 곳이 있느냐며 호들갑을 떨더니 바로 다음날 짐도 풀지 않고 부수수한 얼굴로 내려왔다. 웬일이냐고 물으니, 자기를 가르치는 프랑스의 늙은 건축학, 교수 가 '당신네 나라 직조(織造)에 대한 레포트를 내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황당하여서 그 교수에게 왜 직조에 대한 레포트냐, 고건축 인테리어 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 교수가 눈을 똑바로 뜨고는 「건축이 나무, 돌, 철판들을 아무렇게나 얽어 놓은 것이 아니다. 그 민족의 모든 것이 집이라는 표현 매체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삼베를 짜는 것이 너희 나라 옛집을 짓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다시 이야기 하면 삼베는 너네 나라 사람들이 입기 위해 실과 실을 얽어 놓은 것이고, 집은 그 사람들이 입기 위해 실과 실을 얽어 놓은 것이고, 집은 그 사람들이 생활하기 위해 나무와 나무를 얽어 놓은 차이일 뿐」이라며 침을 튀기면서 철학적인 어려운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이번 방학에 귀국해서 삼베 짜는 것을 보고, 옛집 지은 것을 자세히 살펴서 너희 나라 사람들의 마음과 손 끝 맛, 그리고 안목에 대해 느껴보고 그것을 교수 자신에게도 자세히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고대면 슬항리를 안내해 보여주고는 서울로 보냈다. 옛날 고등학교 선생님의 "정신세계는 동양, 동양에서도 한국이고, 물질세계는 서양이다"라는 말씀이 귓가에 윙윙 거려서 잠을 설친 기억이 난다. 햇볕이 고운 오늘이다. 수선화 꽃 터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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