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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9.05.17 00:00
  • 호수 274

[건축문화의 해 기행수필]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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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과 주춧돌이 만날 때-그렝이

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 5 - 기둥과 주춧돌이 만날 때-그렝이

몇 년전 심훈선생님 막내 아드님이 당진에 오셨다. 그분을 모시고 필경사로 들어가는 도중 기지시 삼거리에서 신호위반을 했다. 변명을 하자면 뒤에 붙은 큰 덤프차의 직진을 돕기 위해 신호등 바로 밑에서 신호를 받고 좌회전을 하면서 보니 먼 곳 신호등이 적색이었다. 그러나 차가 중앙선을 이미 넘어서 찝찝한 마음으로 차를 진행시켰다. 그때 바로 한진방향 도로 구석에 경찰관이 차를 세운다. 이런 때를 보고 송아지하고 호랑이의 돈 허고 막걸리 값만 빼곤 딱 맞는 다고 했던가. 참 알궂다. 창문을 내리고 면허증을 주면서 변명없이 "미안합니다." 하니, 자식같은 경찰관이 "아실 만한 분이 웬일이셔요"한다.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옆에 탔던 심훈 아드님이 킬킬 대면서 변명을 해준다. 영계 경찰관이 싱글싱글 웃으며 아침부터 여덟분을 신호위반으로 적발했는데 나이가 늙건 젊건간에 위반을 인정하는 분이 한분도 없었다면서 아저씨들은 양심적이신 분 같으니 싼 딱시로 떼어 드리겠다며 '공공장소에서 담배 피운' 것으로 해준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받은 딱지 선물인데도 기분이 좋다. 옆자리 심훈 아드님은 역시 우리 고향이라 사람사는 맛이 난다면서 재미있어 죽겠단다. 그분의 모교인 송악초등학교를 설핏 둘러보고 목수노릇 한다는 한진 친구를 찾아냈다. 오십년만에 만나 그분들을 만나자마자 식당으로 들어가서 쏘주를 곱뿌로 들이키면서 어릴 때 빨개벗고..., 계집애 친구 놀리던, 참외서리... 등 해괴 망칙한 말과 소리를 질러대면서 얘기 끝이 한이 없다. 고만 가시자고 해서 심훈 할아버지댁으로 갔다. 산수유꽃이 흐드러져 있다. 목수 친구가 이 정도면 당시로는 좋은 재목을 썼다며 기둥, 문지방을 쓰다듬고 연재 가락을 올려다 본다. 나도 다시 한번쯤 이런 집을 지어보고 싶단다. 술상이 나왔다. 술상은 거들떠도 안보고 목수 친구는 "재오, 이걸 좀봐."하면서 기둥밑을 가리킨다. "술이나 허자고." "이게 뭔줄 알어?" "뭔데?"하며 두 사람은 댓돌에 쭈그리고 앉아 두런댄다. 목수친구가 기둥과 주춧돌이 만나는 부분을 가리키며 기둥나무와 주춧돌이 물샐틈없이 쪽 들어맞게 하는 것이 "그렝이"라는 기술이란다. 그렝이는 주춧돌의 울퉁불퉁한면의 형태를 기둥에 콤파스 같은 연장으로 선을 그려서 그 부분 기둥 밑을 도려내는 것이다. 술상이 토방으로 내려오고 땅바닥에 덜퍽 앉았다. 끝내 두 분은 밤늦게 내게 업혀서 불기없는 사랑방에 뉘어졌다. 아마 그 날밤 두 친구는 이랬을 것이다. 냉방도 좋아라 오십년 묵은 매화타령... 흥얼흥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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