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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9.09.06 00:00
  • 호수 289

[건축문화의 해 기행수필]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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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기둥들을 조금씩 높여야 수평으로 보임을 아는가

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 11 - 좌우기둥들을 조금씩 높여야 수평으로 보임을 아는가

나는 여름 매미소리만 들으면 챙피벙이 도진다. 한참 사진에 미쳐있을 때 서울 궁궐집의 벽, 기둥, 굴뚝, 건물을 대상으로 작업을 했었다. 그 중에 종묘(조선왕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서 사진 땜에 당한 부끄러운 이야기다. 이 집은 길이가 약 50m, 폭이 10m쯤 되는 국내외에서는 보기드문 'ㅡ'자 집 형태를 하고 있고, 그 주변 집의 짜임도 숨은 슬기가 배어있는 집이라는 기초공부를 하고 그 집 앞마당에 섰다. 장엄한 건물 앞에 멀찍이 선나는 내가 너무 작아 보여 카메라를 그냥 들고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건물의 기에 눌린 것이다. 그럴 때 종묘의 기둥높이를 재고 있는 것 같은 젊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사다리를 타고 요새 목수들이 쭉 뽑아서 쓰는 쇠자로 어쩌고 저쩌고 재느라고 고생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뜻밖에 여인네들이었다. "아니 고운 여인네들이 뭐 하는 거예요?" 송글송글한 땀을 콧잔등이에 얹은 여인이 구찮은둣 "기둥높이를 잽니다." "뭘 헐려구요?" 인천에 있는 무슨 무슨 대학 건축학과 나이먹은 대학원생등인데 학위논문 땜이랜다(겉보기에는 30살도 안된 것들이 나이 먹었댄다. 꼴뵌다) "기둥높이 재는 건축과 논문도 있남요?" 말대꾸도않고 "야! 조 ㅁ쉬어서 하자." 내가 걸리적거리는 눈치다. 이상스런 가방에서 깡통콜라를 내게도 건넨다. "사진작가세요?" "아니. 그냥 좋아서." 옆에 옆엣것이 억지로 "취미생이네요." "그려 그러디 왜 기둥높이..." 옛 건축 전공인데 종묘기둥 20개의 높이가 다 다르다고 해서 실지로 재보는 것이란다. "착시(錯視)현상을 바로 잡아주는 전통 기술연구예요." 집의 여러 기둥 중에 중심의 기둥높이를 기준으로 좌우에 세우는 기둥들의 높이를 조금씩 높여주고(귀솟음법), 기둥을 세울 때 그 수직각을 중심기둥 쪽으로 조금만큼씩 오그라 들게(오금법) 해야만 멀리서 보면 추녀가 수평으로, 기둥이 수직으로 서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만약 기둥높이를 똑같게 세우고 세우는 각도를 모두 수직으로만 하면 추녀 양끝이 처져보이고 기둥이 밖으로 쏠린 듯한 착시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지식의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런 지혜로운 이치는 젊은 것들 데리고 수박막에 앉아 내가 가르쳐야 할 것인데 내가 배우다니. 얼굴이 화끈달아 허둥허둥 깡통콜라든 채로 내빼온 일이 있었다. 그때도 매미가 서럽게 울어대는 더운 여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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