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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9.10.11 00:00
  • 호수 293

[건축문화의 해 기행수필]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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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불맛(?)을 볼 때는 봐야 됩니다

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 13 - 나무도 불맛(?)을 볼 때는 봐야 됩니다

우리들의 집은 나무로 얽어져 있다. 거의 모든 건축물이 나무로 엮어진 때문에 몇백년씩 된 집이 보기 힘들고 불에 아주 약하다. 그래서 우리의 집 상량보에는 물을 다스린다는 "용"자와 거북 "귀"자를 써 붙이고 불의 침범을 막아주기를 빌었었다. 목수들이 첫 번째 갖추어야 할 것은 나무를 다루는 솜씨이다. 나무를 고르는 눈, 매만지는 눈썰미, 구석구석 다듬어내는 솜씨다. 특히 소나무에 대해서는 나무박사가 되어야 했다.나무를 매만지는 눈썰미, 기술 중에는 재목을 끄슬리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집에 쓰일 때 나무를 옛 법칙대로 다듬어 새집을 짓는다는 소문을 듣고는 옛 건축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안동댐 수몰 지구안의 옛집을 다른 곳으로 옯겨 짓는 공사판을 찾아 나섰던 적이 있다. 아름드리 대들보감 십 여개와 기둥감 수십개를 받침대 위에 걸쳐 놓고 있었다. 껍질을 벗겨낸 나무에는 송글송글 송진이 맺쳐 있었다. 이를 프로판 가스를 이용해 끄슬리고 있는 참이다. 언뜻 개털을 끄슬리는 식이다. 원래는 청솔가지나 광솔로 했었단다. "이렇게 나무에 불질을 하면 나무의 성질이 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나무도 불맛을 볼 때는 봐야 합니다." 목수의 말이다. "나무는 불을 가장 싫어하기도 하고 또한 목타게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그럴 듯한 말이다. 또 누가 묻는다. "불질이 건축적인 면에서 어떤 역할을 합니까?" 머리 허연 노인네의 유식한 질문이다. 이 노인네는 어릴적에 가난이 한이 되어 잘 지은 개와 집에서 잠깐이라도 살아보는 것이 평생 소원인 할머니다. "소나무는 송진이 흠뻑 배어있어서 그냥 마르게 되면 송진이 굳어져 나무가 쩍쩍 터지거나 뒤틀리게 됩니다." 또 뒤에는 묻는다. "나무속에 배어있는 송진은요?" 큰 목수 숨을 슬쩍 돌리고는 "소나무 재목에 불질을 하면 송진은 슬슬 뜨거운 불 닿는 쪽으로 빨려나와 불을 만나지요/" 더 이상 아무도 묻지 않는다. 큰 목수 설명이 백제시대의 목박사(木博士) 말투다. 그때 맨 날 개량 한복입고 다니던 솜털이 부성숭한 어리 학생이 "그러면 목수님은 소나무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불을 부리는 겁니까?" 큰 목수 대답이 아주 무식하게 철학적이다. "그게 그거 아닌가요." 나무와 불이 서로 상극이면서 서로 화합을 이룬다는 것은, 아주 어렵다는 동양철학에서나 들어본 말이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말. 목수가 문살에서 주역을 가르치더니 이제는 대들보로 옮겨서 철학을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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