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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9.12.13 00:00
  • 호수 301

[건축문화의 해 기행수필]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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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

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 16 - 과학으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

서산시 대산에 있는 정유회사를 설계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울먹거리며 하는 말이 명퇴를 당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잘 견딘 편이다. '이제부터 네 인생의 시작'이라는 등 허튼 소리로 위로를 해 준게 지난 여름이다. 그후 소식이 뜸하더니 시월 중순에 연락이 왔다. 옛날 미국에서 정유회사설계 때에 만난 건축회사 사장 내외가 여행을 왔다는 것이다. 안내할 일이 걱정이라며 도움을 청했다. 국도를 따라가면서 우리 옛 건축을 소개하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답을 주었다. 며칠후 연락이 오길 "내일 당진부터 시작해서 부산까지 스케줄을 잡았으니 안내를 하라"며 닥달이다. 할 수 없이 그들을 만났다. 칠순에 가까운 미국사람 같은 미국사람인 남자와 사십이 될까 말까한 금발, 파란 눈... 하늘 사람 같은 아름다운여인이었다. 국도 옆에는 단풍이 벌써 어슬렁거리고 코스모스가 떼거리로 열병을 서듯이 아름다웠다. 우리들 다섯명은 정말로 신이 났다. 어느 곳에 가나 길 옆에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미국인들 말이 옛건축 볼 것 없이 그냥 가자는 것이다. 반 듯한 길을 지나면 오르막에 구부러진 산길이 나오고 이를 뺑뺑 돌아 오르면 누런 황금들판이 아래로 확 펼쳐진다. 내리막 길을 바글바글 돌아 코스모스길 꽁지달고 어스슴 보이는 겹겹의 먼산을 배경으로 한 우리 강과 들의 펼침은 참으로 곱디 고왔다. 미국인 내외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좋아하고 내 친구 내외는 하필 그동안 못잔 낮잠을 즐기고 나는 붕 들떠서 영어단어로 떠듬거리면서 부산 범어사까지 갔다. 그 유명한 일주문 앞에 섰다. 칠십노인 미국인이 받침돌을 쓰다듬고 외로, 바로,바로,외로 돌며 말없이 헤맨다. 말이 안된다며 우뚝 선 그는 '이는 신비에 쌓인 건물'이라는 것이다, 건물기둥 넷이 일렬로 서있고 돌기둥과 나무기둥이 만나는 부분이 이상하고 그 위에 짜여진 건물이 너무 무겁고 그 무게를 받쳐주는 아무런 장치도 없는 데 무너지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은 세계 건축의 불가사의란 것이다. 과학으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란 말이다.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한다. 내 말이 우리 문화에는 과학으로 안되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하루 밤새에 오백리를 갔다 오는 축지법, 날이 시퍼런 작두날 위에서 춤추는 신들린 무당의 발바닥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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