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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의 물질 댓가

근로의 물질 댓가

아주 오래된 얘기도 아니다. 마을의 큰 부잣집에 품팔이를 하루라도 더 나가기 위해 주인 눈에 들려고 죽을줄 모르고 일했었다. 역시 공사판에서도 감독 눈에 들어 식구들 먹여 살리려고 별짓 다하며 무던히 애쓰던 것이 몇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일자리가 많지 않았던 당시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당진에서 수천명의 많은 지역주민들이 직접 처음 대규모 토목공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기회는 삽교천방조제 공사 후 추진되었던 80년대의 수로개설사업이었다. 당진군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수로공사에 S토건 등 여러 회사에서 여건상 지역민을 잡역부로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삽만 들고 머리만 채워도 일당 임금이 나오는 괴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지역은 이때부터 돈 받고 일하는 곳에서 눈속임과 대충대충 풍조가 물들게 된 것이다.
그 두번째가 90년대 들어 수조원을 투입했던 H철강 공장건설사업이었다. 못주머니만 차고 나가면 농촌 품삯의 두 세배 주는 것은 보통이요, 저녁마다 회식잔치로 일관하는 것은 일상이었고 알만한 사람과 짜고서 한명이 몇명 일당 받아 챙기는 재주까지 부렸다.
이러니 농·수·축의 1차 산업이 기반인 우리지역이 온전할 리 없다. 더구나 IMF 관리하에 들어온 후의 공공근로사업은 우리의 근로행태를 묵사발로 만들었다.
엄연히 소정의 임금을 받는 일터에서 해가 중천에 뜬 후 일을 시작하고 일할만한 선선한 시간인 오후 4시면 벌써 슬슬 끝낼 준비를 한다.
일손돕기 차원에서 지원받은 인력을 화가 치민 주인이 끝내 그냥 돌려보내는 현상이 생기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그 대상이 대개 없는 분들이고 실직자의 생활비 지원 차원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임금은 순수한 국민세금이다. 회사예산과 차원이 또 다르다. 귀중한 혈세가 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체납독촉하는 우리의 사정이 무색해진다. 더구나 근로경시와 대충하는 방식의 만연은 우리사회에 엄청난 부작용이 생긴다.
집행처는 반드시 댓가에 상응한 근로기준을 지켜야 한다. 비록 시류에 따라 그들이 그런 형편이 되었지만 열심히 땀흘려 일하는 풍토로 끌어들여 진정한 땀의 가치를 알게 하여 빠른시간내 잘살게 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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