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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28 10:4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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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

부끄럼

어릴 적부터 몹시 수줍음을 타는 사내 아이가 있었다. 부모 형제나 주위로부터 어찌 그렇게 숫기가 없느냐는 나무람도 받고 놀림이 심했다. 이러한 성장과정에서 이 아이는 수줍어 하고 부끄럼 타는 것에 대해 항상 죄책감으로 알고 억눌려 지내야만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린시절과 학창생활을 보내고 군복무까지 마친 어느날 그는 문득 자신의 모습을 새삼스럽게 되돌아 보며 의아해 했다. 그다지도 부끄러움에 화끈거렸던 예전과 현재의 그렇지 않은 모양새를 놓고 대견함과 동시에 허탈함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이 청년은 이러한 현상이 잘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줍음이란 부끄러워 하는 태도를 말한다. 부끄럼이란 양심에 거리껴 남을 대할 낯이 없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수줍고 부끄러워함은 이 사회의 상당한 필요조건 중에 하나이다. 그것은 옳고 착함을 근본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용기의 부족으로 연결된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평소 숫기 없다고 알려진 사람이 어떤 기회가 주어지면 달변으로 변하는 경우도 그렇고 샛님 연예인이 무대 조명만 받으면 신들리는 현상이 있듯이 진정한 용기와는 별개의 사항으로 봐도 틀림은 아닐성 싶다.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얼마나 우리 주위를 애틋하고 순수하게 만드는지 우리는 간과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요즘의 늑대같은(?) 부모들은 본래 부끄럼을 타고 난 양같은 애들을 뻔뻔스럽게 키우기 위해 무던히도 애쓴다. 아마도 수줍고 부끄럼 타는 것이 기가 죽는 것으로 착각해서 그런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한순간 뻔뻔함에 농락 당할지 모르지만 결국 순수함의 도덕을 아는 부끄럼을 맞이하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된다.
아무리 날샌 요즘이라 해도 진실로 수줍음과 부끄럼을 아는 다소곳한 규수가 있다면 사이버 세계가 아니라 인터넷 할아버지 세상이라 해도 목매일 남자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상황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이것은 불순한 사회에 대한 반증현상이다. 조석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귀담아 보자. 봉급이 비싸게 느껴지는 공청아저씨, 표를 준 사람을 배반하는 귀하신 몸, 대대로 다해 먹고 아직도 입맛에 안든다고 물렁거리는 곳에 으름장 치는 어르신네들. 제발 새천년 오기 전에 정신질환이라도 앓아 본래대로 부끄러움을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남 똑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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