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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기

더불어 살기

지금은 봉급이 거의 통장으로 입금되지만 봉투로 받을 때 얘기다.
공직에 있는 중견간부 한사람이 얼마나 알뜰하던지 부하직원들이 지갑을 한번도 구경 못할 정도였다. 월급을 타는 즉시 확인절차를 끝낸 후 한푼도 빼지 않고 금방 반창고로 밀봉해서 여직원을 통해 근무시간 중 집으로 부인에게 전달했으니 대단히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스카치테이프였다.
그런데 그 간부는 봉급날 십여명의 직원들을 이끌고 저녁 회식자리까지 마련하는 자상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그때마다 1, 2차 경비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주변 사람들만 알고 그냥 세월이 흘렀다.
근검절약해서 부자가 되는 것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나 상업적인 세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양심에 호소하는 윤리라는 것이 존재한다. 내 것 내맘대로 못쓰고 남의 눈치를 봐야 한다든가. 내심 제집 애들 등록금 걱정하면서도 어디어디에 성금을 꼭 내야 할 입장 등이 바로 그런 경우들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주위를 외면하고 살 수 없다. 그리고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반드시 과정과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경거망동해서는 안된다. 부자나 빈자는 다 그렇게 된 까닭이 있다. 특히 가진 자들은 그 과정에 대하여 더욱 겸허함을 가져야 한다. 물려받은 땅부자도 과거 천석만석꾼의 그 땅을 매만져주고 목에 풀칠한 사람들이 흘린 땀의 결과이다. 기업을 승계받은 사람 역시 회사를 일으킨 공신들의 덕을 입었다.
설혹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도 남의 도움없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자신의 노력이 가장 크다고 해도 결론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과정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말고 늘 같이 나누는 심정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남보다 위에 오르려는 속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평등을 내세운다. 사회주의에 빠지는 민중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욕심을 간과한 기형적 사상이긴 해도 없는 자들은 벌어서 균등하게 나눠 먹자는 이론에 현혹될 수밖에 없다. 능력의 땅, 자본주의가 만개한 미국에서도 잘 나가는 재벌을 억지로 쪼개 균형을 잡는다. 같이 나가자는 얘기다.
우리 지역살림이 어렵고 서민 사정도 말이 아니다. 농촌엔 IMF 한파가 이제 온 듯하다. 노력해서 잘살고 앞장설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여유있고 혜택받은 사람들은 뒤쳐진 사람들을 끌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의무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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