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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28 10:4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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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박수산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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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일구며 여든 시름달래

박수산 할머니

텃밭 일구며 여든 시름달래

40세에 혼자되어 혈육없이 40년
20평 남짓 문전텃밭이 밥줄


"박수산 할머니의 7월 26일 일기를 대신하여 여기에 적음"

박수산(81세) 할머니는 40세에 혼자되어 혈육은 한점도 없이 이곳에서 혼자 40년을 살고있다.

한달이 넘는 땡볕더위와 가뭄까지 겹쳐 해가 뜨기전 이른 새벽인데도 후덥지근하고 무더위 땀방울이 등으로 앞가슴으로 주르르 흐르지만 오늘이 합덕장날이라 장에 갖고갈 것을 마련하느라 채소밭을 뒤적인다. 밭이라고 해야 20평 남짓한 문전 텃밭이다. 시들은 넝쿨에 호박이 그나마 몇개 달려있어 땄으며 가지 대여섯개, 그리고 깻잎을 뜯었다. 깨도 가뭄에 자라지 못해 중강아지 키와 비슷하게 자랐는데 이것도 매일 바가지로 물을 끼얹어 이나마도 컸다고 믿고 있다.
대소쿠리에 호박, 가지, 깻잎을 수북하게 담아 머리에 이고 집을 나섰으나 발따로 몸따로 머리까지 따로따로 움직여 중심이 잡히지 않아 발을 옮길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소소리에 사는 친정동생(남. 75세)에게 전화를 걸어 자전거로 장터까지 실어다 달라고 했다.
겨우 시장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덥기 전에 팔고 일찍 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먹은대로 안되는 것이 장사인 게다. 그것도 리어카에 채소를 가득 담아 파는 전문적인 장사꾼이라면 몰라도 나같은 늙은이가 대소쿠리에 몇개를 갖고나와 쭈그리고 앉아 있으니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도 않는다.
오전 장이 끝나갈 무렵 젊은 새댁이 무엇이라고 묻는데 잘 들리지 않아 응! 응! 하면서 되묻고 있으려니 그 색시는 이미 딴곳
으로 발길을 옮긴 후였다. 한나절이 지났어도 하나도 팔려가는 것은 없고, 호박, 가지, 깻잎은 시들시들 더위를 먹는다. 염치
불구하고 남의 가게 처마끝으로 그늘따라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늘에 들어서니 잠이 쏟아져 쪼그리고 한잠을 자고 말았다. 눈을 뜨니 시장끼가 심하게 온몸을 후려친다. 하는 수 없이 천오
백원하는 냉면을 채소를 팔면 주기로 하고 한그릇 시켰다. 그러나 더워서 그런지 반도 못먹었다. 냉면이면 잘 넘어갈 것 같아
시켰는데 생각과 입이 또 따로따로이다.
해질녘에 가서야 같은 예배당에 다니는 성도 한분이 떨이로 팔아주었다. 넉넉하게 받은 값이 칠천원이다. 냉면값을 갚고서 남은 돈 오천오백원을 몇번이고 세어본 후 속옷 주머니에 쩔러넣고 집으로 달음질을 쳐 왔는데 벌써 어둑어둑하다. 전기세 3천원, TV시청료 3천원을 따로 몫을 지어 방바닥에 놓는데 모자란다. 다시 집어들어 이번에는 전기세 3천원, 그리고 다음주일 예배일때 낼 연보 2천원의 몫을 놓았다. TV시청료는 내달로 미루기로 한 것이다.
올봄내내 몸이 아파 예배당에 못간지 넉달이 되어간다. 이번 주일은 꼭 가기로 작정을 하고 헌금 2천원을 따로 몫지어 놓았다.

이것이 대신 써본 할머니의 일기다.
헌금함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동전두닢을 넣었다. 이것을 바라보고 서있던 예수는 많은 회중들에게 말을 했다. “모든 사람들은 풍족한 가운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를 모두 넣었기 때문에 제일 많이 넣었다”라고 말했다. (루 21.1~4)
박수산 할머니나 성경에 나오는 과부나 가난하고 외롭다는 데 서로 다를바가 없다.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차의 간격은 없는것 같다. 노인들은 얼마 안있다가 먼저 사라질 길손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의 희망이 여전히 있으며 그 희망에 의지하고 바라며 살고있는 것이다.
늙어지니 귀가 멀어지고 눈은 침침해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잘 안들리니 응! 응! 하면서 큰소리로 되묻고, 눈이 잘 안보이니 더 똑똑히 보기위해 손등으로 눈을 비비면서 애를 쓰는 것. 바로 이런 행동이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표시하는 노인들의 특유한 희망이고 또 바램인 것이다.
이세상 부의 절대적인 부분을 소유한 극소수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분에 넘치는 소비로 자기 만족을, 자기 과시를 하면서 즐기고 있을 때 아직도 우리이웃에는 가난에 찌들고 마음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기만 하다.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정성이나마 이들과 함께 나누며 사는 이들이 적지않은 점이 다행이다.
“양을 만나면 사자가 되지만 사자를 만나면 양이 된다”는 러시아 속담을 진국이 우러나올 때까지 씹어 볼 일이다. 사자를 만나면 사자가 되고, 가련한 양을 만나면 순한 양이 될수는 없는 일인가.
몸이 불편하여 몇달째 예배당에 못가서 이번 주일에는 헌금통에 넣기위해 구겨진 천원지폐를 다림질하는 박수산 할머니의 손등에는 80여생의 여정이 새겨져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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