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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박상희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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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싸이클의 거장

박상희 할아버지

한국 싸이클의 거장
“가슴에는 비록 일장기를 달았지만”

사람들은 땀흘려 일하면서 자기 가족을 부양하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남에게 어떠한 경우라도 억압받는다면 풀려나기를 바라면서 정의롭고 평화스러운 이웃을 만들고 역사의 수레바퀴안에서 자기에게 닥쳐올 좋은일과 나쁜일을 가려가면서 스스로를 결정하며 앞으로의 인생을 창출해 가는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하면서 살게 된다.
우리는 과거 일제식민지에서 36년을 억압받고 살았다. 땅을 빼앗기고, 말과 글을 빼앗겼으며 성씨(姓氏)도 창씨라는 허울속에 없애버리려 했다. 심지어 무궁화나무도 뽑아버렸다.
그러나 일본이 나라를 통치하던 때도 우리민족은 무궁화를 사랑하고 나라꽃, 민족의 꽃으로 아끼었으며 태극기처럼 나라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오늘날 뭐니뭐니해도 우리나라의 국화(國花)라면 요즘 개량된 잡스러운 무궁화가 아니라 홑꽃으로서 중심이 해가 떠오르는듯 붉고, 꽃잎의 끝쪽은 엷은 분홍이며 전체에 자줏빛이 은은히 번져있는 재래종의 무궁화라야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꽃에서는 우리겨레의 은은한 멋과 끈기를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배달민족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기로 작정했던 일본도 히로시마에 한방 얻어맞고서는 큰집덩이가 한쪽으로 기울더니 나가사끼에 또 한방 먹고는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오늘이 광복 49주년일이라 두서없이 적어봤다.
그러나 그당시 우리민족은 어떠했는가. 일본이 두손을 들었을때 해방과 자유, 그리고 광복을 맞는 기쁨하나만을 느끼면서 태극기를 흔들었고, 밤낮 없이 거리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광란의 도가니를 만들고 있었다. 아무 준비도 없었고 또 흥분을 억누를 목표도, 계획도 없었으며 민족을 인도할 지도자도 없었던 것이다. 그저 36년간 묶였던 쇠사슬이 풀려난 기쁨에만 스스로를 내맡겼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새삼 우리민족이 철저하게 주인이 되지 못했던 해방의 의미를 새겨보며 박상희 할아버지를 만나본다.

광복당시 28세의 청년이었던 박상희(77세)할아버지는 어떻게 살았을까? 박상희씨는 합덕읍 소소리 출생으로 17세부터 싸이클을 타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일제의 폭정밑에서도 우리민족의 희망 또는 자긍심을 갖게해준 것이 있었다면 마라톤의 손기정씨였다. 또 싸이클에서는 엄복동씨가 있었기에 우리민족은 보이지 않는 자부심으로 숨을 쉬었고 맥박이 뛰었던 것이다.
박상희씨는 바로 그 엄복동씨의 지도 아래서 싸이클을 배웠다. 그리고 그를 따라 선수생활을 했다. 박씨가 출전한 경기중에서 가장 큰 경기는 한국선수 5명과 일본인 선수 2명이 겨루는 전국일주 싸이클경기였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던 이 싸이클 경주에서 그는 무려 41주간의(약 300일) 국내경기와 일본국토를 누비는 81주간의 도로 싸이클경기를 벌였다.
그외에도 각지방에서 주최하는 싸이클 대회에 출전하였는데 우승은 늘 한국선수들의 차지였다. 비록 앞가슴에는 일장기를 달고 달렸지만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한국의 승리’를 부르짖고 있었다고 박상희씨는 말한다.
광복후에 합덕에서 전국 규모의 싸이클대회를 2회에 걸쳐 개최하였는데 그 밑거름으로 오늘의 합덕농고 싸이클부가 탄생했으며 거기에는 박씨의 몫이 너무도 컸다.

무궁화는 6월하순경부터 피기 시작하면 10월까지 한결같이 피어오른다. 이렇게 오래 피는 꽃이지만 꽃한송이 한송이는 아침해가 뜰때 피었다가 해가 질 무렴에는 시들어지는 꽃이다. 또 번식력도 강하고 왕성해서 일본인들이 그렇게 없애버리려고 하였으나 멸종되지 않았던것은 그 강한 생명력 때문이었다.
“무궁화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어지는 것은 영고무상(榮枯無常)하는 인생의 원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계속적으로 피는 것은 자강불식(自强不息)하는 군자(君子)의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문일평씨가 쓴 화하만필(花下漫筆)에 나온다.
우리는 지금 49년동안 휴전선이란 금을 긋고 이쪽 저쪽 꽉 문을 닫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고있다. 몸집이 작은 제비도 수만리 남쪽에서 봄에 왔다가 가을이면 돌아가고 또 내년에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자연의 기류(氣流)를 탈줄 아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이 이렇게 어렵게 49년을 지세워야 했던 것은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될것인지.
우리는 무궁화의 끈기와 왕성한 생명력과 같이 참된 민주화가 되어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 또 인간들의 자유권을 바탕으로 삼고 평화스러운 통일을 바라고 있다.
36년 긴세월을 남의 국기를 달고, 남의 이름으로 살아온 박상희씨를 비롯한 우리민족의 애환은 통일된 나라의 당당한 발전으로만 치유될 수 있는게 아닐까.
“한핏줄, 한겨레이면서도 서로 헐뜯고 싸웠던 우리들의 잘못을 깨우쳐 슬기와 지혜를 주소서”하고 다함께 기원을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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