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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합덕읍 운산리(合德邑 雲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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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이 피어있는 산 운산!

흰구름이 피어있는 산 운산!
합덕읍 운산리(合德邑 雲山里)

꼭 80년전인 1917년에 합덕면사무소가 대합덕리 덕곡에서 지금의 운산리로 옮겨오면서 합덕이란 지명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지도상에 한점으로 드디어 합덕이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운산리에 면사무소가 들어앉으니 각종 공공기관이 하나 둘 함께 자리를 잡아갔으며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먹고 입고 해야 하는 기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물류유통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시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인구는 늘어나게 되니 집들이 크고 작은 것을 헤아릴 수 없게 지어지게 되었다.
합덕면사무소가 운산리로 옮겨오게 된 배경중 지나쳐 잊어서는 안될 것은 일본인들의 토지 수탈정책으로 덕곡의 넓은 논에 면사무소를 그대로 유지하면 많은 농토가 잠식됨을 막기 위해서였고, 또 운산리 구릉지대인 솔나무 동산은 값도 싼데다 몇몇의 산지주들이 들판에서의 노동력을 손쉽게 얻기위해 자기들의 산들을 헐값으로 임대 및 매매를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합덕읍의 법정동리수는 14개인데 그중 운산리는 읍 전체인구의 2/3이상이 거주하고 학교, 조합, 병원등이 있다. 상업지역으로서 5일장이 크게 열려 인근 우강면, 순성면, 면천면, 신평면등의 중심적인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80년의 짧은 역사의 합덕읍 운산리는 그동안에 기록된 자료와 기술된 것등을 찾기 어려운 곳으로 앞으로 합덕의 역사를 기록하고자 할 때 꼭 발굴되어야 할 자료들이기에 각계의 인사들이 노력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합덕읍 운산리!
우리 어버이들이 살았던 삶의 흔적을 더듬으면서 지난날의 영광스러웠던 일과 아팠던 상처를 되새기고 나아가서 오늘의 나를 되묻고 지역공동체를 생각하고 합덕읍 운산리에 대한 사랑과 미움을 확인, 정리하는 작업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일을 거울로 삼아 이 땅에서 대대로 살아갈 우리 후손들에게 지금의 우리들의 메세지를 전해주는데 그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옮기기에는 자연지리적 측면과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 즉 인문지리를 알아보는 바탕에서 몇번에 나누어 연재를 할 것이다.
본래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는 것은 두려움과 무서움을 유발한다. 바로 열대지방의 원시림이나 설악산, 지리산등의 자연림등에서 우리는 보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손길이 적절히 닿아있을 때 우리들의 정서는 안정을 찾으며 인간들의 주거공간으로서도 쾌적하다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합덕읍 운산리는 사람의 손길이 너무 닿아 원형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곳이다. 그것도 근대 도시형태의 계획적인 전원도시도 아니고 어줍잖게 무계획적으로 마구잡이식 도시로 변모된 운산리. 집을 짓고 살다보니 길이 필요해 길을 내고 하는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하다가 이제는 더 내 땅을 내놓을 수 없어 그대로 유지하다 보니 이제와서는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갈매기산에 올라가 전후좌우를 살펴보면 갈매기산이 명당터라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여기다 신사를 짓고 우리들에게 갖가지 굴욕적인 인내를 강요하였던 곳이다. 그 치욕의 신사가 헐린지 5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신사산이라 하는등 무지의 소치를 의식 못하고 함부로 말하는 것을 볼 때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합덕초등학교 뒷산은 신사산이 아니라 갈매기산이다.
차령이란 산줄기는 충청도를 가로질러 서해안의 광천 오서산에서 멈추어 섰다가 바닷길을 따라 북쪽으로 머리를 틀어 예산의 가야산을 우뚝 솟게 하였고, 아미산에서 몽산을 건너 얕은 구릉지로 이어지는 소소리를 지나 운산의 갈매기산에게 그 대장정의 끝을 맺는 곳이였다. 이 산맥의 안쪽으로 기름진 땅을 우리는 내포(內浦)라 하였고 우리가 바라다 보는 넓은 평야 소들강문도 내포의 중심지역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 당시 갈매기산을 비롯하여 운산리 일대는 소나무가 우거져서 연호방죽 30여만평에서 서식했던 철새들과 우강 송산리와 원치리 일대의 갯벌에서 겨울을 지내던 온갖 철새들이 둥지를 틀고 번식하고 새끼를 기르던 곳이었다.
수십만마리의 철새들이 둥지를 틀던 갈매산과 운산리 일대는 새들로 하늘의 구름을 덮은듯 하다하여 갈매기산, 운산이라 이름이 지어졌을 만하다. 들판에서 올려다 보이는 갈매기산은 갯벌에서, 연호방죽에서 피어오르는 운무로 항상 구름을 덮고 있으니 운산이라 불렀을 수 있었다. 흰구름이 피어있는 산 운산이라!.
지금도 합덕하면 연호방죽을 연상하고 버그네장으로 떠올리는 사람은 여기 살고 있는 주민보다 외지사람들에게 더 알려진 합덕의 대명사이다.
1938년부터 1946년까지 합덕초등학교 교명에 합덕연호공립학교로 개명하여 불렀던 것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중 하나다.
합덕읍 운산리! 갈매기산에는 갈매기의 그림자와 그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길은 없고 지금은 몇그루 안 남은 소나무 베기작업이 한창이다. 합덕읍민 체육공원이 들어설 계획이다.
불과 80년의 짧은 역사의 뒤안길을 이곳 저곳 살펴보니 치욕적인 것으로 몸서리 치는 일도 있었지만 또 환상의 기쁨이 넘쳐흐르는 것도 있었다. 바로 우리역사 흐름의 한 장면인 것이다.
장정환 옹과 합덕 중동 노인회 여러 회원들의 얘기를 참고하였고, 합덕초등학교 오춘근 교장선생님의 자료를 참고 하였다. 좋은 자료나 이야기를 소유하고 계신 분들은 합덕읍사무소에 연락주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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