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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우강면 송산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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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평화의 수호신 당산 거북바위

우강면 송산리 <3>
마을 평화의 수호신 당산 거북바위

우강면에는 산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 송산뿐이다. 일명 당산이라고도 한다. 당산의 끝자락이라 하여 당산미라고 부르는 곳, 당산의 허리쯤에 띄엄띄엄 매달려 있듯 집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 송산리 1구이다.
구릉지를 밭과 밭들이 넘나들면서 때로는 과수원도 있다. 행정리로는 송산리 1구이며 음골이다. 이곳에 2백여년전 순흥안씨 참찬공파의 안철(安喆)이란 분이 낙향하여 자리잡았다.
“밭이 있어도 갈지 않으면 곡간이 비게 되고, 책이 있어도 가르치지 않으면 자손은 우매해진다. 곡간이 비면 세월을 지내기가 구차하게 되고, 자손이 우매하면 예의에 소홀하게 된다. 오직 갈지않고 가르치지 않음은 곧 부모의 허물이다”라고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백락천(白樂天)이 말하였다. 순흥안씨들은 부모의 허물을 쓰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 흔적이 남아있다.
당산 정상에는 큰 거북바위가 있다. 거북바위는 마을을 향해 기어내려오는 자세로 서 있다. 당산미 마을 사람들은 이 거북이가 마을을 지켜주며 거북이의 기(氣)가 온마을에 서려 마을의 번영과 각 가정에 복이 든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당산미 마을 전체가 평화스럽고 한편 현대문명 발달의 땟국에 물들지 않고 옛스러움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옛부터 우리나라 민족의례행사는 절기상으로 정월대보름에 가장 많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새해 1년간 마을의 평안과 집안의 안전을 기원하고 풍농(豊農)과 풍어를 기원하는 의식이자, 고되고 힘든 노동으로부터 해방감을 맛보고 또다시 찾아오는 농사일과 바닷일을 추스려보는 공동체 문화이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上元)은 농경민족인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달은 곧 풍요와 생산력을 상징한다. 즉 농경사회의 세계관은 남자-하늘-해, 그리고 여자-땅-달로 이원화 되어있다. 달은 여성원리 또는 지모신(地母神)의 신앙체계에 깊숙히 잠재되고 있는 것으로서 생산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고 믿고 있었다.
최초로 만월이 되는 정월대보름은 이런 의미에서 만월제의(滿月祭儀)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둥그렇게 떠있는 보름달은 우리민족에게 풍요와 생산, 희망을 주고 또한 개인의 절실한 소망을 비는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왜정시대에는 우강 들녘 각 마을마다 정월대보름 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청년들이 횃불을 들고 모여들었다. 이웃마을과 횃불싸움을 벌일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우선 산더미 같이 쌓은 짚누리에 불을 지피고 달을 향해 각자의 소원을 빌면서 절을 한 다음, 징과 꽹과리를 치고 신명나게 한바탕 춤을 추면서 빙빙 돈다. 일종의 워밍업이며 이웃마을에 횃불싸움을 거는 신호탄인 것이다.
청년들은 횃불을 들고 이웃마을을 향해 목청껏 함성을 지르면서 달려간다. 마을경계인 논두렁에 이르면 서로 횃불을 던지며 싸움을 벌였다. 이런 횃불싸움은 부락민간의 서로간 단합을 이루게되며 곧 다가올 농사에도 신명나게 함께 일할 수 있는 화합의 행사였다. 특히 마음 깊은 곳에 앙금으로 가라앉은 일본인들의 압제에 대한 서러움도 토해내는 치료제로도 큰 효력을 보게 되는 행사중에 으뜸으로 치러지는 행사였던 것이다.
현재 송산리에 거주하는 안영목(75세)씨는 (안철씨의 10대 손으로 우강면장으로 정년퇴임) 현대 물결이 치기 전에는 순흥안씨 집성촌으로서 30여세대 2백여명이 모여 살았는데 지금은 17세대 70여명으로 줄었다고 하였다.
송산출신 안씨문중으로 큰 재벌은 나오지 않았지만 교육계에서 또 공무원 사회에서는 결백하고 순박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고 한다. 당산의 돌 거북이의 기를 마시고 사는 덕으로 이곳 출신으로 현 당진군의회 의장 류태철씨와 직전 우강농협 조합장이었던 이은호씨 등이 있다.
세종대왕 때 북방 6진을 개척한 김종서는 호조판서가 되자 오만해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황희(용의 눈물에서 태종의 도승지) 정승을 찾은 김종서는 그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크게 노한 황희정승이 갑자기 하인을 불렀다. 하인이 들어오자 황희정승은 “지금 김판서가 앉아계신 저 의자의 한쪽다리가 짧은듯하니 어서 나무토막을 가져다 바쳐드리도록 해라”하고 호령했다. 그제야 잘못을 깨달은 김종서는 땅바닥에 엎드려 사죄했다. 황희정승은 용서를 구하는 김종서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게 무슨 큰 죄가 되겠소만 장차 나라의 중심을 맡을 사람일수록 사소한 일거일동이라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오.”
연초 우리지역 각급 조합장에 선출된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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