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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8.03.23 00:00
  • 호수 216

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신평면 신평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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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객산 동쪽 관절마을엔 중시조 문정공의 후광이

신평면 신평이씨 <2>
망객산 동쪽 관절마을엔 중시조 문정공의 후광이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인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인의 신체구조, 특히 얼굴구조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에 있어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것을 조명하는데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같은 민요라도 남도민요는 목놓아 부르고, 서도민요에는 콧소리가 많이 들어간다. 그것은 위턱이 큰 호남인과 코허리가 높은 평안도 사람의 생김새 차이 때문이다. 한국인은 두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억5천년전 동남아 쪽에서부터 남방계의 이주민들이 아주 서서히 우리 한반도를 향해 올라오다가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때 북쪽의 대륙으로부터는 북방계 이주민들이 내려와 북한의 압록강변의 신의주에서 경상도의 김해에 이르는 곳까지 대각선으로 분포해 살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사람의 약 80%는 북방계 사람으로 눈썹이 흐리고 쌍꺼풀이 없으며 코는 높지만 콧구멍은 좁고 머리카락은 검은 특성을 갖고 있다. 반면에 남방계는 나머지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눈썹이 길고 눈에 쌍꺼풀이 있으며 콧구멍은 넓고 입술이두꺼워서 남성스러운 면을 강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면 야구선수 박찬호는 남방계에 속하고 선동렬은 북방계 얼굴에 속하는 얼굴형이다.”(S.K 사보에서 인용)
신평면 중앙에 우뚝 솟은 망객산 동쪽자락 관절(신평면 신흥리)에는 신평이씨 중시조 문정공(中始祖 文定公) 가종(可種) 어른의 사당이 건립되어 있다. 불과 7년 남짓하는 새 건축물이다.
사당(祠堂)은 조상의 신주나 영정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우리가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는 것은 조상을 공경하고 받드는 의식적인 절차이다. 그러나 제사라는 의식은 공동체 의식이고 혈연친족 유대의식을 강화하는 최상의 제도인 것이다. 또한 평소에 할 수 없던 말도 조상님 앞에서는 가능해지기도 하니 언로의 폭이 넓게 열려져 있는 것이 제사 때인 것이다.
그리고 제사의 의식이 치러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집안과 사회적 지위의 획득이 확인되고 불충한 자손에 대한 경고성 주의도 자연스럽게 내려지면서 후손들에게 교육적인 자리가 제사의 자리인 것이다.
관절에는 신평이씨 중시조 문정공의 사당 옆에 묘와 묘비가 갖추어져 있다. 문정공의 묘비는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비문을 육안으로 판별하기 어려워 묘비의 비문을 탁본하여 새롭게 묘비를 세워놓았다. 음력 10월 시향제에는 전국에 흩어져 사는 문중 종친들이 30여명 참석하여 조상들의 음덕을 기린다.
필자는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제를 뫼시는데도 몇년에 한번꼴로 참석하였다는 자책을 스스로 맛보면서 안동권씨나 한동장씨의 시제에는 관광버스가 4~50대 몰리는 장관을 보고 부끄러워 며칠을 붉은 얼굴로 다녀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TV에서 아침마당이란 프로에는 헤어져 살았던 부모형제를 찾는 프로가 있다. 며칠전 30대의 가장이 출연했는데 아버지가 사망후 어머니가 재가함으로 버려져 고아원에서 자라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후 지금은 직장인으로 어엿한 2남의 아버지로 가정을 꾸미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어머니를 찾기 위해 아침마당 프로에 나왔다. 진행자는 그에게 어머니를 찾아야 할 이유를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자식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본적란에 기재사항을 모르니 공란으로 남겨야 하는 슬픔과 본관란에 관향이 어디인지 모르는 아픔과 허전함에 어머니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고 실토했다. 즉, 자신의 뿌리를 꼭 찾아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우리들의 뿌리를 스스로 캐어보아야 될 것이다.
우리는 자기의 이름이 여러 사람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원한다. 우리의 이름에 자랑스러운 칭찬과 존경과 영광이 따르기를 바란다. 우리는 죽은 뒤에도 자기의 이름이 역사에 오래 남기를 원한다. 나의 이름이 우리 선조님들의 후광을 받고 천추만대에 길이 빛난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다.
어른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사하는 절차에는 ‘무슨 공파의 몇대손 아무개입니다’하고 수인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TV프로에 나온 그가 이런 인사를 하는 자리에 있었다면 그 당혹감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 것인가.
신평면 신흥리에서 대대로 삶의 터전을 일궈온 이병두씨는 신평이씨 중시조 문정공의 18대손이다. 신평땅에서 대를 이어살고 또 살면서 뿌리를, 가지를 치면서 살았기에 중시조 문정공이 더 높이 우러러 보이는 것이다. 신평이씨는 신평면과 순성면 등에서만 2백여호 1천여명이 망객산 봉우리를 올려다 보면서 시조와 중시조를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자(老子)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고 하였다. 그 빛을 부드럽게 하고 그 티 끝에 동참하여라. 화는 부드럽게 하는 것이요, 진은 속세요, 광은 재능을 의미한다. 재주는 남보다 뛰어나다고 저 혼자 잘난체하는 고고한 태도를 버리고 자기의 재능을 부드럽게 하여 여러사람 속에 동참하고 동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지금 경제적인 국난을 당하고 있을 때 다같이 힘을 합하여 우리들의 고생을 큰 그릇으로 만들어 볼 때이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훌륭한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고 험난한 바다에서 노련한 선장이 탄생하는 것이다.
<신평이씨편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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