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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1.03.26 00:00
  • 호수 363

아시나요, 당진경찰서 형사 9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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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만 인구 지키는 25시 강행군

[마당]아시나요, 당진경찰서 형사 9인방
12만 인구 지키는 25시 강행군

우리의 일상생활을 이루는 촘촘한 사회그물망을 ‘시스템’이라고 하나보다.
시스템 안에는 이것을 이루는 요소들이 제각각 자기역할을 하며 전체의 톱니바퀴와 맞물려 돌아간다. 달의 자전과 공전처럼, 지구의 자전과 공전처럼, 태양계의 수많은 행성들이 자기운동을 하며 ‘질서’라는 아름다운 관계 안에서 끝없이 운행하고 있는 것처럼.
‘운석’이라는 하나의 별똥별의 궤도 이탈도 혼자의 일이 아니다. 궤도 이탈은 아름다운 질서를 깨뜨리는 일이며 이탈한 별의 방랑은 다른 별들의 운행에 장애가 될 뿐 아니라 심지어 다른 별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작은 별을 파괴시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소우주 하나의 소멸이라는 순간적이고도 역사적인 일이다.
탄소의 원자결합에서도 하나의 원자가 빠지면 그때는 더 이상 탄소가 아니다.
하나의 원자가 다른 이웃원자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탄소가 탄소인 것은 그것들이 서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버리는 일 한가지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길거리에 내놓은 쓰레기를 치우려면 쓰레기를 거두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거둔 쓰레기를 실을 차량이 있어야 하고 또 그 쓰레기차를 운전할 운전기사가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다가오는 9월이면 경찰 생활 20년을 맞는 박종만 형사계장의 말이다. 박계장은 사회에서 경찰의 존재를 이런 식으로 비유해서 말한다. 어느 한 톱니바퀴가 제구실을 못하면 전체시스템에 장애가 오는 것처럼 세상의 어떤 직업도 사회전체에 유용하다면 가치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직업들 사이에 귀천은 없다.
“농부는 농부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형사는 형사대로 자기일에 충실한 것이 곧 사회를 위한 일이며 사회구성원들을 돕는 길”이라는 것이 박 계장의 생각.
그 생각에 따르면 경찰의 일이란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는 ‘일상적인 질서’의 파괴를 예방하고 또 수습하는 일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최소한의 자기생활을 위협과 파괴로부터 지키는 전방에 그들이 서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형사계에서 하는 일은 법이 정한 범위를 넘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용의자를 추적, 검거하는 일이다. 오래 전에 TV를 통해 방영되었던 드라마 <수사반장 designtimesp=21120>을 떠올리면 아마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진경찰서 수사과 형사계에는 늘 평상복에 운동화 차림인 형사 9인방이 있다.
박종만계장과 이명희·홍광정 반장, 구진모·한대희·권순희·강환구·왕운경·김영근 형사가 바로 그들이다.
박종만 계장은 형사계에서만도 13년간 잔뼈가 굵은 베테랑으로 지난 연말에는 범인검거 공로가 인정되어 포상특진도 했다.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에 시원시원한 입담이 개성있다.
홍광정 제1반장은 다방면에 재주가 있는 재주꾼으로 얼마전까지 경무계에 있다가 다시 형사계에 합류했다. 서글서글한 성격과 유머로 분위기 전환에 한몫을 한다.
이명희 제2반장은 조사계 출신답게 사기, 황령 등의 경제범이나 지능범을 추적하는 데 남다른 순발력을 갖고 있다.
구진모 형사는 사이버범죄 전문으로 남들보다 큰 체격으로 한몫을 한다.
강환구 형사는 도합 20단이 넘는 무술고단자로 과묵하고 부지런하다.
권순희·한대희·왕운경 형사는 폭력범 검거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는 형사들.
가장 경력이 짧은 김영근 형사까지 현재 형사계 형사들은 모두 일선 파출소나 다른 부서에서 특출한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동료경찰들의 추천으로 형사계에 발을 들여놓은 경우들이다.
박 계장의 표현대로라면 ‘그만큼 꽉 짜여진 정예부대’인 셈이다. 이들 형사중 적지않은 경우가 박 계장과 함께 형사계 활동을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박 계장은 타 부서에 가 있는 이들을 다시 불러모은 셈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렵죠. 우선 서로 호흡도 잘 맞아야 하고 일당백이 아니면 형사 9명이 어떻게 12만명이나 되는 군민의 치안을 책임질 수 있겠어요?”
군단위 도시 중에서도 유난히 규모가 큰 당진군은 인구나 시설이 그만큼 많은 반면 ‘군’이라는 이유 때문에 경찰인력 배치에 많은 제한을 받는다. 12개 읍·면의 12만 인구를 보호하기 위해 발로 뛸 수 있는 형사인력은 고작 9명 뿐인 것이다. 그러니 일당백을 기준으로 짜여진 형사 9인방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최상의 인력구조인 것이다.
“형사들에게 책임감은 기본이죠. 하지만 이 일은 일 자체에 대한 희열과 성취감을 맛볼 줄 모르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뻑하면 일주일씩 열흘씩 잠복근무를 해야 하는데 일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며칠동안 밤잠을 설치며 범인을 검거했다고 해서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문도 하고 조서도 받아야 한다. 박 계장은 용의자를 앉혀놓고 조서를 받다가 졸았던 경험을 말하며 웃는다.
경찰 발령을 받고 당진에 온 이후 20년동안 단 한번도 고향 부산에 명절을 지내러 가 본 적이 없는 박 계장은 자신은 자식으로서,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는 “빵점”이라고 말한다. 명절이라고 쉬기는 커녕 명절을 노리는 특수범들 때문에 초긴장한 채 복무해야 되는 게 그런 때이다. 동창회에서 연락이 오지 않은 지도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꼬마아이들 그림 속에서 잠자는 아버지들은 대개 경찰관일 걸요. 우리 형사들도 그래요. 우리 아빤 맨날 잠만 잠다고 애들한테 구박받는데요.”
그나마 최근에는 8일에 한번 당직근무를 하고나서 하루를 쉴 수 있지만 사건을 미결상태에 두고서 쉬기는 더 어려운 일인지 형사들은 비번인 날에도 부득 부득 출근하기 일쑤다.
입담이 시원한 박 계장은 “형사들은 미친 놈”이라고 말한다. 일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최근에 당진에서 일어난 강력사건 중에 미제사건이 없는 것이 그걸 말해준다.
이명희 반장과 구진모 형사는 며칠 전 절도범을 쫓다가 용의자가 차량을 들이대는 바람에 팔과 얼굴에 각각 상처를 입고 있었다.
“바라는 게 뭐 있겠습니까? 다만 여러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을 때 단계높은 사건에 먼저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절도사건 같은 일이 뒤로 미뤄져서 피해입은 분들한테 미안하죠.”
이날 형사계 사무실에는 한 절도범이 훔친 장물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강도, 살인사건들이 웬만큼 해결되자 절도사건에 뛰어들어 대형사건 용의자를 검거한 것이다. 이 물건의 주인들을 찾아 전국에 걸쳐 돌려줘야 하는 일도 형사들의 몫이라니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괜찮습니다. 보람이라는 게 그런 소박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언제나 미안할 뿐이다. 남편없이 사는 듯한 아내와 아빠없는 아이들처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하다. 형사들 마음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김태숙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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