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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01.04.02 00:00
  • 호수 364

[마당]스승이셨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 가신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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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선대의 가업 이어 한방의료

스승이셨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 가신 자리에서…

3대째 선대의 가업 이어 한방의료
삼대한의원장 한기선

당진읍 읍내리 637-11번지. 담백한 멋이 나는 2층짜리 유럽풍 건물에는 <삼대한의원>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이 건물은 병원 원장 한기선(37세)씨가 그의 선친과 공동으로 환자를 보기로 하고 함께 구상하고 함께 지은 것이다.
선친은 바로 이 건물이 서있는 자리에서 오래도록 창덕한의원을 운영해온 한창우 선생. 선친은 몇 년전부터 건강이 썩 좋지않게 되자 한의학을 전공한 둘째아들 기선이 자신을 도와주기를 바랬다. 공부는 계속 하면서도 ‘애초부터 고향에 내려와 가업을 이을 생각이었던’ 아들도 이에 기꺼이 응했다. 두사람은 새 건물을 짓기로 했고 그동안 한기선씨는 서울 목동에서 잠시 개업을 하기도 했으며 당진에 내려온 후에 장약국 옆에서도 잠시 개업을 했었다.
“아버지를 원장님으로 모시고 아버지의 전통과 경륜에 저의 현대적인 의술을 조화시켜 한방에 관한 한 최대로 도움을 드리고 싶었죠.”
원장 한기선씨의 말이다.
그래서 건물 내부에는 두사람의 전문의가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준비가 잘 갖춰져 있다. 1층에는 접수, 상담, 진료, 약제실이 갖춰져 있고 2층에는 침구와 물리치료실이 있다. 특히 1층에 마주보고 있는 두개의 진료실은 독립과 조화를 염두에 둔 아버지와 아들의 외길 인생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친은 1999년의 어느 날, 개업한 새병원에서 진료 한번 해보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바로 개업예정일에 쓰러진 선친은 일주일 후에 돌아가셨다.
“개업을 앞두고 완성되어가는 병원 원장실에 오셔서 친구분들과 차를 드시곤 하셨는데 정작 개업일에 쓰러지셔서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릅니다.”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의 뜻은 알 수가 없으니 아마도 자신의 자리에서 할 바를 다한 아버지의 마음이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아들을 통해 가업이 이어짐을 확신하는 것으로 충분했기에 아버지는 새 자리를 깨끗이 아들에게 남기고 가셨을 것 같다. 이렇게 해서 한기선씨는 새 병원의 원장으로 삼대한의원을 개업하게 되었다.
사라지지 않는 것. 살아있는 동안에 피와 땀과 애정을 쏟은 일이 어딘가에 남아 계속 숨쉬고 살아 이어지는 것. 죽음을 앞두고 우리에게 남아있는 일 중에 이만큼 뿌듯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참스승과 참제자는 서로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이 사랑이야말로 진리와 학문과 인술을 비롯한 모든 ‘업’의 계승과 발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삼대한의원 원장 한기선씨는 ‘삼대’라는 이름 그대로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일찍이 선생들로부터 한약과 역학등을 사사받은 할아버지 한경남 선생은 1900년대 초 내포지방의 당대 명의로부터 한의학을 전수받아 당시의 그릇된 민간요법을 바로잡았다고 한다. 선생님이 잠든 사이에 몰래 일어나 의술의 비법이 적힌 책들을 베껴적으며 공부했다는 당시 할아버지의 필사기록은 아직도 한원장에게 보관돼 내려오고 있다.
할아버지는 특히 소화기계통과 부인과에 밝았다는데 남자는 신수로, 여자는 혈을 위주로 다스리는 치료법은 아버지에게도 그대로 전수되었다.
할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선친 역시 경희대를 졸업하고 한의원을 열었다. 병의 지역성이라고 할까. 선친은 이지역 환자들의 소화기 장애가 간기능 장애와 동반됨을 알고 일찍 농촌성 소화기 장애에 대한 독특한 처방을 시작했고 할아버지처럼 불임에 전문이었다.
한 원장 역시 한의학의 길로 접어들어 벌써 17년이다. 임상도 임상이지만 아직도 손에서 공부를 놓지 않는 학구열로 올해는 동국대 한의대 박사학위를 받는다.
한 원장이 한방의료인의 길로 들어선 데에는 아버지의 권유도 있었지만 이미 한방과 의술은 한원장에게 있어서 어린시절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었다. 한원장은 이런 일화를 소개한다.
약제보다 침구에 전문이었던 아버지는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환자에게 “이 병은 약을 써야할 병이지 침으로 나을 병이 아닙니다”라며 돌려보냈다. 어린 한기선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읍내에 한번 나오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했는데 시골에서 먼 길을 걸어 어렵게 찾아온 환자를 자신의 분야가 아니라고 돌려보내다니 환자에게는 그처럼 맥빠지는 일도 없을 듯싶었다. 아버지에게 왜 그러시느냐고 따졌다가 혼이 났었다.
“최근까지 제가 구상해온 것들은 대부분 그때 마음 먹었던 일입니다. 병원에 온 사람은 어디가 아파도 아프고 괴로워서 찾아왔을 텐데 일단 병원에 찾아온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 도와주자고 마음먹었죠. 물리치료실까지 갖춘 큰 병원을 짓고 아버지와 한 병원을 하기로 했을 때에도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물리치료는 전문인이 그만두는 바람에 시설을 반환했다. 한원장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오롯이 혼자다. 의술에 대한 큰 포부는 현실에 맞닿으면서 조금씩 접혀졌다. 이제와 생각하면 아버지가 옳았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침으로 나을 사람이 아니면 미안해도 돌려보낼 수밖에 없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고 해도 정작 현실에서 혼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일이란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닌가.
벌써 할아버지때부터 3대째 치료를 받고있는 환자들도 있다. 그때 의사선생님의 손주에게서 치료를 받자니 너무 어리게만 느껴져 안심을 못하는 그들에게 한원장은 웃음을 보낸다. 이론적으로 배운 것이 많지만 결국 그것은 아버지의 처방을 기본으로 응용된다. 어쩔 수 없이 병에는 지역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아버지의 빈자리가 갈수록 크다. 새록 새록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들, 아버지가 하셨던 선택들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멀리서 그런 방법으로 여전히 당신 자신을 아들에게 주고 계시다.
한 원장은 최근 충남도가 2대 이상 가업을 이은 전문·희소가정에 수여한 전통문화가정 인증서를 당진군을 대표해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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