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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가곡리와 동곡리의 나루터 2
“썰물 때면 바지 걷고 걸어 다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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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곡리 은골과 쌍천동 

송산면 동곡리에 남은 옛 지명 중 ‘은포’라 불리는 포구를 기억하는 이는 만나지 못했다. 다만 현재 송산방조제를 막은 지점에 은골이란 마을이 있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안평일 씨의 집은 앞마당에서 낚시대를 던지면 바다에 닿을 만큼 바다와 가까웠단다.

“지금 송산방조제에 위치한 휴게소 바로 옆이 옛날 우리집터인데, 집에 앉아서 바닷물이 들어오면 망둥이 잡느라고 낚시질을 했어. 거길 은골이라 불렀어. 그 근처에서 어업했던 사람은 나 하나였고. 집 앞까지 물이 들어오니까 포구는 아니었어도 배를 대놨었지. 그리고 우리집에서 한 500m 떨어진 곳에 소금을 실어 나르는 부두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가 쌍천동이라는 데여. 소금 실은 돛단배가 그때만 해도 한 10척은 왔다 갔다 했지.”

송산면 동곡리와 송악읍 고대리 사이로 흐르던 바닷길은 신흥개발 방조제와 송산방조제가 건설되면서 막혔다.

 

동곡리와 안섬 사이 ‘장거리 해변’

“동곡리 땅인데 성구미하고 사이지. 지금 현대제철 고로 세운 곳, 그 자리일 거야, 아마. 거길 윗장거리, 아랫장거리라고 부르는데, 장거리에 바위가 세 개가 있었어. 그 사이에 곤쟁이 잡는 살을 두 개 쳤다고.

그때는 그물이 없으니까 갈대 같은 걸로 밀짚방성 만들듯 엮어서 끄트머리만 모기장 같은 걸로 만들어서 세워놓고 곤쟁이를 잡았어. 젓갈 담가 먹는 곤쟁이라고 있어. 아주 작은 새우 같은 거. 그걸 지금 돌아가신 이춘호 씨가 했던 걸로 알어.”

그 밖에도 장거리라 불리는 해안가에서 사둘질도 이뤄졌다.

“나 어릴 때 어른들이 밤중에 가서 사둘질을 하셨지. 밤에 가야 많이 잡으니까. 그때는 전깃불도 없고 하니까 석유등 달고 가서 물 들어올 때 가서 사둘질을 했다고. 위험했지. 그때만 해도 안개도 많이 끼고 그러니까 못 나와서 죽은 사람들도 많았지.”

1960년대에만 해도 간조시 동곡리와 내도리 사이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사람들이 바닷길로 왕래를 했단다. 사리 때 물이 많이 빠져나가면 바지를 걷어붙이고 걸어 다닐 정도였다.

“조금때는 물이 많이 안 나가니까 수영 쳐서 왔다갔다 했다고. 거기서 얼마 안 되니까. 옷 벗어서 머리에 감고. 그때는 내도리라 하지 않고 안섬이라고 했는데, 바다를 건너가지 않고 길로 갈려면 중흥리 거쳐서 빙 돌아야 하니까 아침부터 걸어도 저녁 때나 다 돼야 안섬에 들어가잖어. 그러니까 쉽게 바닷길로 건너 다녔지.”


우현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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