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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오섬포구 7
오섬의 별미인 맛조개호박볶음과 소금에 절인 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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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 때면 오섬포구 앞 갯고랑에도 펄이 드러났다. 오섬 앞 펄에는 특히 맛조개가 많이 났다. 오섬 주민들은 ‘써개라’는 맛 잡는 도구로 맛을 캤다. 더러는 펄에 커다란 둥지처럼 땅을 파고 들어앉아 맛을 잡기도 했단다. 그러다 물 들어오는 때를 놓치면 허겁지겁 구덩이를 빠져 나오느라 식겁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만 파서 내버리고 내가 들어 앉어. 그럼 송송 구멍이 뚫어져 있어, 그게 맛이지.” (고간난)

그렇게 잡은 맛은 주로 된장찌개를 끓여 먹었다. 애호박이 날 때쯤 함께 넣어 볶아먹으면 그 맛이 참 좋았다. 밤이면 횃불을 들고 게도 잡으러 다녔다.

“기름 깡통에다 솔방맹이 넣고서 그릇 하나 갖고 다니면서 거이(게)를 찾았어.” (호병철)
뱃사람들이 소금에 절여온 꽃게도 별미였다.

“새우젓 잡으러 간 배들이 꽃게도 절여 갖고 와. 그게 소금에다 범벅을 해서 그렇게 맛있었어. 그냥 소금에 절인 게를 짤라서 먹는 거지. 그때 냉장고가 어딨어? 그거는 배에서 아주 절여 갖고 가족들 주려고 갖고 오고 그랬어.” (김옥순)

 

나룻배 타고 오섬과 슬항리 왕래

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토사 퇴적 등의 이유로 어선들이 다시 인천 등지로 떠나면서 오섬은 포구로서의 기능을 점차 잃어갔다. 하지만 1987년 석문방조제 공사로 완전히 바다가 막히기 전까지 갯물이 드나들었다.

물이 드나들 적, 오섬포구에는 어선 말고도 고대면 슬항리를 오가는 교통수단이었던 나룻배가 다녔다. 故 최흥구 씨가 나룻배로 사람들을 실어다 주었다.

“그때 오섬에는 밭이 없으니까, 나룻배를 몰래 타고 슬항리에 가서 참외 서리를 했어요. 그때 나룻배 하는 분이 두 분 정도 계셔서 교대로 했던 것 같아요. 저쪽에서 건너오라고 소리를 지르면 다 들렸어요.” (안명수)

“보덕포, 석문에 가려면 나룻배를 탔어. 사리 때는 한참 가야혀. 물이 쓸 때는 여기서 불과 얼마 안되니까 금방이지만. 나룻배 사공 품삯이 그때 200원인가 300원인가 그랬지.” (김옥순)


우현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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