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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은희/불교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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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가르침

유은희
▷한국문인협회 당진군지부 회원

불교에 대한 애착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믿음에 대한 나의 꿈은 펼쳐지기 시작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라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하는 수도 있고 남에게 누를 끼치는 수가 있지만 그때 그때 대처하며 살기란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어느날 우연히 수덕사에 들러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스님께서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죄를 나무라기에 앞서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우리는 선하게 될 가능성을 찾아 북돋아주기에 앞서 한번 저질러진 악행에 대하여 너무나 지나치게 꾸중을 하고 매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 보건데 참다운 행위는 선과 악을 초월한 자리, 선도 악도 아닌 중도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나쁜 것의 반대가 착한 것이듯이 상대방의 장점을 빼앗아 나의 마음속으로 살며시 넣어놓는다.
부처님은 평범한 인간과 같이 식사를 하셨고 옷을 입으셨으며 잠자고 부지런히 일하셨다. 불경은 인생과 세계에 관한 모든 문제를 담고 있다. 인생의 고와 고의 원인, 그리고 그 해결방법, 질서있는 사회생활, 선과 악의 문제, 올바른 정치와 경제, 자유와 행복에 관한 것까지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불경은 인간들의 모든 의심을 해결해주는 백과사전이고 고뇌와 고통을 제거해주는 명약이라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가끔씩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살고 있나?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누군가의 말대로 우리는 죽지 못해 사는지, 먹기위해 사는지. 정작 자기가 살고 있으면서도 그 이유를 모른다. 아버지 어머니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태어나서 왜 사는지도 모르고 또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도 모르며 오직 먹고, 마시고, 자고, 생각하고 하면서 본능에 의해 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나’인가. 본래의 자기의 ‘마음’이 진정한 ‘나’이다. ‘나’를 모르는 인간이 또 그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나’를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를, 나대로의 세계를 살되 남과 함께 살아야 한다. 자유를 갖되 전체의 질서를 발견하고 자주적으로 참여해야 될 것이다. 남의 생명을 존중하고 그를 사랑하면 나의 생명 또한 존중받고 사랑받을 것이다. 그렇게하면 지적·물적자원을 내가 얻을 수 있도록 하고 바로 사회속에 포용될 수 있는 자비를 자연은 나에게 베푸는 것이다.
불교를 종교로 갖고 산 지도 언 20년. 깨달음의 길이 이토록 어려운 줄 몰랐다. 법당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지난날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반성해야 할 일, 용서를 받아야 될 일이 참 많다. 그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부처님 앞에 앉아 절을 올린다.
깨달음의 길은 어떤 것일까. 자연의 법칙에서 인간의 본성을 깨달으신 분이다. 불교는 자각하는 것부터, 스스로의 바탕에서 착한 것을 자행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불교는 올바른 자각에서 확신하는 믿음을 갖고 또한 원리를 규명하여 완전히 이해된 철학으로써 어떤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오늘날 자각의 인식이 흐려지는 것도 확신하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자기를 가다듬고 깨닫도록 하는 불교는 언제나 자기에게서 비롯하여 자기로 종결짓고 이러한 자기가 일체속의 자기임을 자각할 때 그 믿음과 실천의 행동은 자비와 평등을 바탕으로 하여 자각의 태양을 함께 비추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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