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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과 단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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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대시론

김중회(은수교회담임목사)

기독교 신앙과 단군상

세계의 어느 나라든지 개국신화가 있게 마련인데 우리나라에도 단군신화가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옛날 환웅천왕이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산단수에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칭하고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 한마리와 호랑이 한마리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어대므로 환웅은 신령스런 쑥 한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아야 된다고 했는데 잘 참아낸 곰만 사람이 되어 여자가 되었다. 환웅이 이 웅미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단군 왕검이다. 단군은 나라를 세우고 1,500년 동안 다스리다가 나중에 산신이 되니 그때 나이가 1908세였다’
어떤 이는 단군이 실존인물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단군신화를 왕조사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때로 이 단군신화는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민족의 단합을 이루는 구심체적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근래에 나라가 IMF로 어려움을 당했다고 하여 일부 단체에서 5천년 가까운 고령의 단군을 모셔다가 민족의 단합과 민족정신을 함양한다고 첨단 컴퓨터 세대의 의장에 앉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착오적 발상의 첫번 걸음이 각급 학교 교정에 세우고 있는 단군상이라고 한다면 초·중등학교 학생들이 그 플라스틱상에서 무슨 교육을 얼마나 받을지 참으로 의문스러운 일이다.
개국신화와 단군시조의 이양기는 역사시간에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하고 교정에 이런 조형물 설치는 자제하였으면 한다. 더구나 우리 인구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유일신관의 기독교 신앙인들에게는 자칫 우상물로 비쳐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신앙적인 관점은 우상숭배에 관한 한 단호하다. 과거 기독교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당한 박해와 순교의 역사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원군 때, 일제시대, 공산주의 치하에서 속출한 순교자들은 기독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한편 기독교인들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 단군상 건립을 저지·반대하는 방법이 문제인 것이다. 학교 교정에 세워진 단군상을 처참하게 목을 자른다든지, 볼성사납게 훼손하므로써 오는 사회적 반발심과 저항의식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런 무모한 만용을 용맹성 있는 철저한 신앙이라고 두둔하는 치졸도 경계할 일이다.
사실상 단군상을 처음 보급했던 단체는 그 규모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단군상이 훼손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기독교쪽에서 큰 일이나 난 것처럼 떠들어 대니까 그 단체의 규모가 갑자기 확대되고 전국 규모의 대 단체로 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오히려 단군상 훼손사건이 자꾸 일어나기를 바라는 웃지 못할 상황으로까지 진전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건전한 경쟁인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참으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는 그동안 암묵적으로 기독교를 지지하거나 용인해오던 계층의 사람들을 기독교가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단군할아버지에 대한 정서가 만만치 않다.
바라건대 단군상을 계속적으로 보급하려는 단체나 각급 학교장들은 종교의 관점에서 볼 때 무리가 있음을 알아주기 바란다. 기독교인들은 단군상을 무참하게 훼손하는 경솔을 자제해주기 바란다.
아무튼 나이 많으신 단군할아버지를 우리시대의 국민화합 강사로 모셔와서 단합은 커녕 오히려 갈등의 골만 깊게 파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우리모두 자성을 해야 하겠다. 단군할아버지는 우리의 국조되시는 분이라는 국민정서를 그대로 남겨두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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