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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스트레스 날리는 신나는 노래교습-가요강사 윤세중(당진읍 읍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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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가요강사 윤세중씨의 노래 한토막, 우스개 한토막
음향기기까지 실어 나르는 자칭 ‘문화자원봉사자’


“고향에 늘 뭔가 도움주고 싶었는데 다행히 사람들이 반겨주고 흥겨워 해줘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죠.”
첫 곡에 이미 흥은 극에 달했다. 가락에 들썩이는 어깨는 금새 춤사위로 이어질 것 같다.
26일 오후 2시 당진문화원 강당은 최신가요를 배우는 주부들로 열창의 무대가 됐다. 이들 60여명의 주부들 앞에서 흡사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서로다른 음색들을 멋들어지게 조율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주부가요교실’의 강사 윤세중(42·당진읍 읍내리)씨.
대호지면 마중리에서 나고 자란 그는 25년간의 객지생활을 정리하고 지난해 1월 고향에 정착했다. 서울서 윤씨의 직함은 연예인. 그리고 현재는 가요강사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당진군 문화자원봉사자’라 일컫는다.
문화원 로비에서 만난 윤씨는 땀에 흠뻑 절은 모습이었다. 음향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은 문화원에서 가요교실을 진행하기 위해 그는 모든 음향 기기를 자신의 승합차로 손수 실어 나른다.
“뙤약볕도 마다 않고 찾아와 준 주부님들을 생각하면 저깟 기기들 옮기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구요.”
붉게 상기된 얼굴에 연신 땀을 훔치면서도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노래를 인생의 동반자로 택하게된 동기와 관련해 소시적 추억을 회상하며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는 매우 드라마틱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시절, 학교앞 서점에서 우연찮게 구석에 진열된 민요책 한권을 발견하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그냥 배우고 싶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어릴적 농사일을 거들며 귀동냥으로 배웠던 어르신들의 민요 몇 자락이 절 충동질 했나 싶어요.”
비록 독학으로 익혔지만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민요의 가락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단다. 그렇게 민요는 풍운의 꿈을 안고 상경했던 10대 후반에도 늘 윤씨와 함께 했다.
누구에게나 그랬듯, 동경했던 서울은 ‘기회의 땅’이 아니었다. 떠밀리듯 지원했던 군입대. 그러나 그는 거기서 또 한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신병교육 때 월동준비를 위해 나무하러 산을 탔죠. 늦가을 산이 얼마나 푸근했겠어요. 교관도 안 보이고 요때다 싶어 으슥한 곳에 들어가 냅다 팔베개 하고 누워버렸죠”
창창한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푹신한 낙엽에 누웠으니 어찌 노래 한자락 안나왔겠는가.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다.....하며 연달아 세 곡을 부르는데 느닷없이 워커발(군화)이 옆구리를 치는 거요.” 아차 싶어 보니, 호랑이같은 교관이 떡하니 내려다 보고 있더란다. 이때 들려온 교관의 목소리.‘거기 훈련병. 어디 노래자랑 출신이지?’ 윤씨는 아득해지는 의식을 부여잡고 순전히 상황 모면용으로 “충남 당진서 열린 전국노래자랑 출신”이라고 둘러댔다 한다.
이날 이후 윤씨의 신병기록부 ‘사회주특기’란엔 ‘가수’가 올라갔고, 여기저기 불려다녔던 신병교육대의 인기가수는 자대배치후 경기도 금곡 73부대의 명가수가 됐다. 윤씨는 이때 얻은 자신감으로 제대 후 KBS 연기분과 등록번호 401로 연예활동을 시작했다.
민요 부르길 좋아했던 시골의 한 평범한 청년이 내노라하는 재인들만 모인 연예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지난해 1월, 윤씨는 서울의 터전을 정리하고 고향 당진으로 내려왔다. 이미 4년전부터 서울과 당진을 오가며 마음먹고 준비해 행한 일이다.
“제가 번지르르한 말을 잘 못해서 그렇지 고향사랑 만큼은 누구 못지 않아요. 고향에 늘 뭔가 도움되고 싶었는데 다행히 사람들이 반겨주고 흥겨워해줘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죠.”
타향살이에 실패하고 삶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싶어 넌지시 던진 귀향의 이유에 대해 “고향사랑”이라고 답하는 윤씨였다.
연예활동하면서 왜 그동안 음반 하나 내지 않았냐는 질문에 “관객 앞에서 노래만 부르는 사람이 아닌 함께 호흡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한다. 혼자 불러서는 흥이 안나는 민요처럼, 자신의 재능과 끼를 발휘해 함께 울고 웃으며 흥취에 빠지고 싶었단다.
현재 윤씨의 유일한 경제활동은 주말에 뛰는 회갑, 칠순, 경로잔치 등의 출장밴드 뿐이다. 주중엔 문화원 주부가요교실처럼 당진군민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자칭 ‘문화자원봉사자’로 활동한다. 빡빡한 일정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녀야겠다”고 말하는 윤씨에게 삼복더위에 누구나 다 가는 여름휴가는 아직 먼나라 얘기다.
윤씨에게 가요를 배우는 주부들은 하나같이 윤씨의 열성팬이었다.
“어찌나 신나는지 시간가는 줄도 몰라요. 한 주 농사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여기서 날려버린다니까요. 육십 넘긴 아줌마들이라 가르치기도 힘들텐데 우스개 소리 섞어가며 재밌고 쉽게 일러줘요. 이런 선생님이 어디 있나요?”
순성면에서 두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왔다는 이인수(65세)씨는 아들같은 윤씨를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존칭하며 연신 칭찬을 늘어놓았다.
요즘 윤씨의 얼굴은 TV 전파를 탄다. CNB(충남케이블방송)에서 매주 수·목 오전 8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그가 진행하는 문화원 ‘주부가요교실’이 방영되고 있다. 이제 당진에서 그는 무시못할 스타이다. 브라운관 속 멀게만 느껴지는 화려한 연예스타가 아니라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아들 친구같고 이웃집 아저씨같은, 당진이 배출한 당진군민의 스타이다.
송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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