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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1.08.20 00:00
  • 호수 383

[마당]당진시대 오자찾기 왕 석문면 조이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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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오자찾기는 흠집없는 세상 위한 작은 노력

50년전 문학소년의 열정이 당진시대를 만났을 때

이세상에 사소한 일이란 없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는 선의에서 나온 일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석문면 삼봉2리에 사는 조이형(63세)씨는 나름의 독특한 방법으로 세상에 개입하고 당진시대 신문사를 도와온 사람이다.

주말쯤이면 신문사로 어김없이 날라드는 엽서들이 있다. 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오자나 탈자를 찾아 적어 보내온 엽서다.
누구나 찾을 법한 중대한 오자 한 개를 달랑 적어보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웬만 해서는 알 수 없는 까다로운 실수를 발견해 바로잡아 보내주는 사람도 있다. 특히 까다로운 실수들을 찾아 보내온 엽서를 보노라면 ‘어떻게 이런 것까지 찾아냈을까’ 하는 경탄보다 이런 실수를 찾자면 얼마나 신문을 꼼꼼히 읽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더 고마워지곤 한다.
아무튼 창간 이래로 당진시대는 이렇게 열심히 신문에 실린 오자를 찾아 보내주는 독자들 덕택에 더 충실한 신문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말 사용에 더 조심스러워졌고 표기가 애매한 단어는 반드시 국어사전을 찾아 확인을 거쳤다. 신문에는 관습적이거나 통상적으로 쓰이는 관용어가 의외로 많은데 뜻밖에도 그것들은 우리말의 바른 어법에 맞지 않거니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말이 일본어에 짓밟힌 흔적들인 경우가 많다.
언론이 자기나라 말과 글을 사용하는 데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정말 따끔한 것이다. 신문과 방송은 어느덧 너무나 대중화되어 ‘생활용어의 전도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신문의 독자들이 잘못 쓰여진 낱말이나 글자를 찾아 보내주는 일은 우리에게 늘 경각심을 준다.

석문면 삼봉2리에 사는 조이형(63세)씨는 거의 매주 신문에 실린 오자를 찾아 보내는 분이다. 몇사람이 돌려가며 꼼꼼이 교정을 보는데도 매번 오자가 발생한다는 것도 불가항력적인 일이지만 몇사람이서도 찾아내지 못한 오자를 매번 발견해내는 그분의 꼼꼼함도 놀랄만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1년이 넘도록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엽서에 담아 보내주고 있는 그분의 이름은 이제 아주 친숙한 것이 되어 버렸다. 아마 못생기고 더러 치석도 끼인 이빨을 송두리째 치과의사에게 내보여주는 기분이 그럴 것이다. 처음에는 멋적고 좀 챙피했지만 이제는 어쩌다 그분의 엽서가 늦어지기라도 하면 이쪽에서 먼저 궁금해질 판이다.
이제 초로에 접어든 조이형씨는 삼봉2리에서 조그만 가게방을 하고 있다.
이웃에서 구독하는 당진시대를 어깨 너머로 보다가 사회의 병폐에 대해 정직하게 보도하는 점이 마음에 들어 직접 구독하게 되었다는데 지난 해 7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빼놓지않고 오자를 찾아 보냈다. 누굴까? 신문사 내부에서는 이 얼굴없는 독자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고 이 얼굴없는 독자는 곧 내부의 유명인이 되었다.
“이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구요. 나이도 먹었고 건강도 썩 좋지 않아서 농사지어 먹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그저 좋은 신문 만드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는 일이죠. 뭐.”
하지만 본인의 말처럼 대단한 일이 아니라 치더라도 국어교사도 아니면서 틀린 낱말, 틀린 맞춤법을 찾아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조이형씨에게는 조금은 남다른 이력이 있다. 몸이 허약한 데다 허리수술을 하느라고 중학 졸업에서 학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한 때 작가의 꿈을 지녔던 문학소년이었다.
조용하고 꼼꼼한 성격이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그러나 아주 우연하고 평범한 만남도 깊고 의미있는 만남으로 이어가는 남다른 데가 있어 어린 시절부터 여러 사람과 펜팔을 하는 등 편지쓰기도 무척 즐겨했다.
그 문학소년이 병마로 학업을 중단하고 생활과 싸우며 기나긴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넌 뒤 다시 말과 글에 대한 사랑에 빠진 것은 당진시대와의 이 평범한 인연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타고난 그의 조용한 열정은 이 평범한 만남을 의미있는 만남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방송을 보면서 여전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부정부패라고 생각해요. 당진시대에 관심이 갔던 것도 부정부패에 맞서는 용기 때문이었고 좁은 지역사회에서 할 말은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제가 오자를 찾아보내는 것은 당진시대가 흠이 없는 좋은 신문이 되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죠. 그러면 우리 사회도 조금은 좋아지지 않을까 해서 말이죠.”
아들 딸 잘 키워 시집 장가 보내고 생로병사의 흐름 가운데 여전히 병마와 함께 가면서도 세상이 좀 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다. 조이형씨는 그 마음으로 신문의 흠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의 흠을 없애려는 그의 아주 작지만 섬세한 노력이다.
11년전 위암 수술로 몸이 많이 야위었지만, 신경순환 계통의 장애로 남의 눈에 띄지않는 어려움을 겪고있는 부인과 서로 다독이며 조이형씨는 꼼꼼하게 자신의 안과 밖을 정리하며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길을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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