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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김성기, 합덕대건신협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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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 새 희망


새로운 세기가 다가온 지도 20여일이 지났습니다. 내 자신이 지난날 보다 오늘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반성해 보아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잘하기 위해 사람들의 이목을 의식해가며 매일을 보냅니다.
과거의 일들을 조용히 반성해 보며 내일을 설계해 봅니다. 아직도 나는 성숙되지 못함을 발견합니다.
인쇄기기의 발달은 즉시 일어난 일들을 컬러로 보도해주는 참으로 편리한 시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편리한 물질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사는 우리들이지만 마음으로는 여유들이 그만큼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좋은 시설의 온천탕에 들어가 육체의 긴장을 풀기도 하고 맛좋은 음식을 찾아 가까운 사람과 대화도 해보지만 임시 뿐인 것 아닌가요. 문제의 해답은 결코 없는 것일까요.
청소년들의 문제, 가정의 문제, 사회·경제의 문제, 종교단체들까지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특히 정치적 안정에 그 어느 때보다 큰 기대를 거는 것도 다 우리들의 삶에 희망을 걸기 때문입니다.
새 희망! 과연 무엇에 희망을 두어야 하는지요.
나의 경험으로는 사람은 육체적인 빵으로 만족할 수 없고 하느님 입에서 발한 말씀의 빵이 곁들여야 하는데 그 말씀의 빵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 인간들이 측정하는 계산된 사랑이 아닙니다. 손익을 분석·평가하지 아니하고 학문적인 이론과 논리로 측정하지도 않습니다. 국경과 소속단체의 성분분석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머니가 우리들을 위해 무슨 희생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냥 아낌없이 주었듯이 나도 모르게 우러나는 용서와 자비가 포함된 하느님의 뜻에 응답되어진 상태입니다.
이제 기독교 신자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안에 모든 사람이 한 형제요, 한 가족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교회에 아무리 오랜 세월을 투자했고 희생봉사했다 하더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자매와 이런저런 대화 속에 이렇게 하느님 아버지 아래 우리 온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족처럼 느껴지는 것이 ‘성령’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였습니다.
성령과의 친교가 이루어질 때 총체적 의식 속으로 가게 되며 사랑 자체와 합일되어 사랑의 열매가 맺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함은 포도나무 자체이신 예수님의 사랑 안에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내 생명의 주인이시요, 나는 그분의 모습을 닮은 자녀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하나되었을 때 모든 불안과 불평이 해소될 것이고 머리로 계산하는 삶이 아니라 십자가 지고 어리석게 이웃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 따라 아무것도 갖지 말고 오직 하느님 나라와 그 의을 구하면 그 외의 것은 덤으로 주어진다는 성서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 우리의 새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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