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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01.09.17 00:00
  • 호수 387

무료염습 봉사자 신평면 거산리 이은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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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전 마련해준 고향사람들에게 빚갚는 마음으로 시작

고단한 삶 씻겨 너른 하늘길로

[신평] 평생 가장 어려울 때는 언제일까.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아마도 가족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가 아닌가 싶다. 노환으로 질병으로 때로는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픔은 세상의 어떤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가족이라 해도 망자의 시신을 깨끗이 씻고 닦아 수의를 입혀주는 일은 부부나 자식이라도 하기 힘든 일이다. 아니, 생전의 단정했던 모습을 뇌리에 담아두고 싶은 가족들이라면 애써 피하고 싶어하는 일일 게다.
우리 이웃에는 누군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그리고 피하고 싶은 힘든 일이 있을 때 곁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신평면 거산리에 거주하는 이은우(42세)씨. 이웃의 누군가가 세상을 뜨면 시신을 무료로 염습해주는 일을 2년째 해오고 있다.
“특별한 일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염습은 목욕과 같습니다. 몸을 깨끗하게 씻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혀 좋은 곳에서 편안히 쉬시라고 하는 겁니다. 제가 하는 일은 그저 정해진 수순에 따라 손을 놀리는 것일 뿐입니다.”
예로부터 농촌지역에는 마을단위로 염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왔다고 한다. 거의가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로 어릴 때부터 마을 어른들이 염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배워뒀다가 그 자신이 나이가 들었을 때 상을 당한 집에서 험하고 고된 일을 수고비 없이 맡는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몇개 마을에는 명맥을 잇고 있는 마을 염습봉사자가 있다.
이씨의 경우는 이들과는 다르다. 지역에서 염습 봉사하는 사람들 중 나이가 가장 어릴 뿐만 아니라 송악면이 고향이긴 해도 20살에 고향을 떠나 30대 중반이 되기 전까지 대도시에서 직장을 다녔었다.
“6년전 안산에서 크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도저히 생활을 꾸려나갈 수가 없어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죠. 벌이도 없고 몸은 몸대로 엉망이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머물 방 한칸없이 살길이 막막했던 이씨에게 구원의 손길을 건네준 것은 고향 사람들이었다. 이씨 가족에게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해줬을 뿐만 아니라 당시만 해도 목발을 짚어야만 거동이 가능했던 이씨를 기지시에 있는 동아아파트 관리인 자리에 소개해 주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현재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씨는 2년전 신평농협이 운영하는 주유소의 주유기사로 취직하면서 염습 봉사를 시작했다. 당시 무료 염습 봉사를 하던 신평농협 조합원 김인수(신평면 매산리)씨를 따라다니며 염하는 일을 배웠다. 고향사람들에게 빚갚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주검을 만지는 일은 30대 후반의 이씨에게는 곤욕스런 일이어서 처음에는 꿈자리까지 뒤숭숭했다고 한다.
“험하게 돌아가신 분들은 시신 밑으로 진물이 흐르고 악취가 심해 지켜보던 가족들도 슬그머니 방을 나가버립니다. 경건해야할 주검 앞에서 비위가 상해서야 안될 말이지만 도저히 돈 받고는 이런 일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마을 저 마을 불려 다니며 시신 돌보길 2년여. 이제는 주검 앞에서 담담하게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씨의 염습 봉사일은 가족들도 최근에서야 소문을 듣고서 알았을 정도로 조용조용 행해진 일이다.
이씨는 얼마 전부터 장의협회에서 주는 기능사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다. 제대로 교육을 받고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6년전 고향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험한 객지에서 어찌되었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저 고마운 마음에서 계속하고 싶은 일입니다. 자격증을 따게 되면 상주되는 사람들도 안심하고서 일을 맡길 수 있겠지요.”
염습은 살아서 겪은 온갖 아픔을 씻고 청결한 몸과 마음으로 떠나라고 남은 사람들이 해주는 마지막 보답 행위이다. 이은우씨는 평생 염습봉사를 하며 굴곡 많았던 자신의 삶과 사람들에게 빚진 마음을 씻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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