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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0.06.05 00:00
  • 호수 325

축구를 위해 태어났어요 - 합덕읍 운산리 권우현과 그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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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위해 태어났어요”

유럽 프로무대 꿈 안고 브라질 유학 간 열세살 소년
합덕읍 운산리 권우현과 그의 아버지

“그 애는 어려서부터 남달랐어요.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는 걷는 법이 없었죠. 늘 뛰어만 다녔으니까요. 하도 개구장이어서 어떤 장소에 출입을 못하게끔 뒤주같은 걸로 막아 놓으면 훌쩍 뛰어넘어버릴 정도였어요.”
열세살의 나이로 브라질에 유학 중인 권우현군의 아버지 권영국(45세)씨의 말이다. 이제 막 10대에 들어선 철부지 같은 아들을 머나먼 이국땅에 떠나보낸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 이 아버지의 덤덤한 표정은 더욱 예사롭지가 않다.
아버지가 이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현이가 그 어린나이에 이국 만리를 건너간 것은 그 아이가 타고난 명이요, 그것에 따르는 순리요, 또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우현이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유럽 프로무대 진출을 위해 우현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현이가 남다른 운동신경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주 어려서부터였다. 동네 아이들과 골목놀이를 할 때에도, 공을 가지고 놀 때에도 우현이는 눈에 띄게 빠르고 민첩하며 역동적이었다. 마치 축구라는 게임의 <수 designtimesp=24805>를 읽고 있는 것처럼 그 아이는 아버지가 보기에도 꼭 뛰어야 할 코스를 종횡무진 뛰는 것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우현이의 재주는 더욱 두드러졌다. 달음박질에서도 우현이는 다른 그룹의 아이들을 멀찌감치 뒤에 따돌리고 혼자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우현이의 이런 모습을 가장 관심있게 지켜본 것은 바로 아버지 권영국씨였다. 그 자신 어려서부터 축구를 좋아했고 운동이라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뛰어 다닐 때의 어린 우현이의 모습은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아버지는 개인사업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틈이 날 때마다 우현이의 손을 잡고 우현이가 좋아하는 축구공을 들고 가까운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우현이와 함께 하는 즐거움은 무척 컸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근심스럽게 우현이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잠자는 시간과 학교에 있는 시간, 식사시간을 빼고는 하루의 모든 시간을 뛰고 공차는 데 여념 없이 보내는 꼬마를 보면서 아버지는 과연 이 시골에서 저 아이의 재능을 썩혀야 할 지 고민하였다. 게다가 잔디가 깔리지 않은 운동장은 꼬마들이 하루종일 전력을 다해 뛰기에는 너무나도 좋지않은 환경이었다. 축구에 대해 나름대로 식견을 가진 아버지는 흙구장에서 뛰는 것이 어린 아이들의 관절성장에 그리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한결같은 후원자이자 정신적인 지주였던 아버지의 조언과 위대한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우현이의 소망으로 우현이는 우선 축구 명문인 서울 강서초등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 이때가 4학년을 맞을 때였다.
거기서도 우현이는 이내 두각을 나타내었다. 남들보다 한 뼘은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얼굴과 달릴 때 매서워지는 눈빛. 우현이는 결국 5학년이 되던 11세에 한국축구 유소년 국가대표 선수에 발탁되었다. 의례적으로 6학년부터 발탁하는 전례를 깨고 우현이는 최연소 국가대표선수가 된 것이다. 5학년 때 우현이는 6학년 형들을 제끼고 주장으로 맹활약, 강서초등학교의 우승을 지켜나갔다.
올해 열세살인 우현이, 목동중학에 입학하자마자 브라질 유학길에 오른 우현이는 참으로 화려한 이력을 국내에 남겼다. 최연소로 유소년 국가대표선수에 기용된 것 뿐 아니라 6학년이던 작년에는 일본의 초청으로 일본 천황배 전일본 초등학교 축구대회에 참가, 280여개 학교 가운데 B조 우승을 차지했으며 우수선수로 개인메달까지 땄다.
우현이는 아버지의 투지와 어머니의 사교성을 닮았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의 우현이는 마냥 개구장이지만 일단 마운드를 밟고 나면 맹수가 된다.
우현이는 작년 한 때 장염을 앓아 고생을 하기도 했다. 우현이 어머니 신출균(45세)씨는 우현이가 서울 이모네 살던 지난 3년 동안이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 어린 아들을 매정하게 떼어놓은 남편이 야속하기도 했고 일주일에 서너번씩 아들을 만나러 가는 일도, 아들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일 못지 않게 어려운 노릇이었다. 신씨는 서울서 돌아올 때면 차 속에서 내내 울었다.
“보고싶죠. 하지만 견뎌내야죠. 그리고 아이가 잘 견뎌내고 있는데요, 뭘... 일주일에 두번씩 전화가 와요. 잘 있다구요. 목소리도 항상 밝아요. 얼마 전에는 편지를 보냈더라구요. 유럽 프로무대에 서는 그날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구요. 저도 이렇게 말하죠. 네가 힘껏 하는 만큼 이 아빠도 힘껏 너를 도우마, 우리 함께 한번 멋있게 해보자 라구요. 욕심을 낸다면 우리 우현이가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세계적인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건 제 생각이죠. 이젠 모든 게 우현이 자신에게 달려있으니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우현이를 믿어요. 어쨌거나 최선을 다할 녀석이라는 걸요. 그것이 자기의 길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합덕에서 <대건 designtimesp=24817>이라는 조그만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권영국씨 부부는 힘껏 돕겠다는 아들과의 약속을 꼭 지킬 생각이다.



김태숙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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