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시절 정기고사 문제를 출제하면서 아이들의 성적이 너무 좋으면 어쩌나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이 고민을 들은 선배교사들은 하나같이 쓸데없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한 점수와 엄청난 차이에 너무 실망했었는데, 당시 수학을 담당하셨던 교감선생님께서는 성적이 너무 저조해서 재시험까지 치른 것을 보고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정확히 25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아이들의 학업성취도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예전에는 한두 번 설명을 하면 다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결론은 교사의 설명으로 아이들의 실력이 금방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점이다. 물론 수업시간에는 이해를 하지만 계속해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는 반복 학습이 이어지지 않으면 금방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얼마 전 자료실에 수학노트가 수북하게 쌓여있는 것을 보았다. 담당교사는 휴식시간마다 아이들의 노트에 일일이 사인을 해주었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풀어 제출하면 교사는 일일이 점검을 해 주는 것 甄. 이를 통해 아이들이 가정에서 스스로 문제를 풀어 봄으로써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게 됨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여파 때문인지 최근에 아이들이 수학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다 보니 영어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아이들이 “수학 때문에 영어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영어공부에 노력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대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나온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하루빨리 영어에도 전념할 수 있도록 영어를 왜 해야 하는 가에 대한 현실적인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 노력 때문인지 영어 문제를 풀어 제출하는 학생들이 많아 졌다.
아침 출근하면 책상위에 거의 이십 여권의 책이 수북히 쌓여있다. 채점을 하고 멘트를 달아주는 수고가 뒤따르지만 아이들 스스로의 노력을 보는 것이라 생각하니 대견하기도 하고 담당교사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교사가 없는 순간에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학력증진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 학교에서 한두 시간 수업을 듣고 특강에 참여하는 것 자체로는 실력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는 강한 믿음을 아이들도 공감한 결과이다.
송악고 교사 |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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