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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9.25 00:00
  • 호수 631

[영화로 펼쳐보는 세상] 중앙역 - 누구나 인생의 끝에 서면 뒤돌아 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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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출향인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
하루종일 매트리스 위에서 뛰고 걷는 매트리스 워크맨이나 접시의 강도를 실험하기 위해 종일토록 접시만 깨뜨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새 생명만을 받는 직업도 있다. 몇 날 며칠을 열거해도 부족할 직업의 세계에는 누가 더 위대하고 아니면 초라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어느 한 분야도 대단하지 않는 직업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이 좋으냐고 개인적으로 질문을 받는다면 아무래도 난, 영화나 연극의 배우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들의 직업은 자유자재니까.
「중앙 역」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의 중심에 자리 잡은 중앙 역을 무대로 감독 월터 셀러스가 메가폰을 잡았다.
중앙 역의 한 귀퉁이에 엉거주춤하게 자리 잡은 책상과 의자 하나가 있다. 책상과 의자의 주인은 중앙 역의 건달에게 자릿세를 지불하며 그곳에서 삶의 터전을 유지하고 있는 늙은 처녀 도라(페르난다 몬테네그로)였다. 도라의 직업은 중앙 역을 통과하는 모든 문맹자가 대상이며 그들의 편지대필을 해 주고 수수료를 받고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녀는 신청자들 앞에서는 열심히 대필을 해주는 척한다. 삐걱대는 책상 위에서 유행가 가사나 욕지거리를 써도 모를 문맹자들을 속이고 그녀는 편지들을 그녀의 집으로 가져와 쓰레기통에 처넣어 버린다.
그녀는 선생이란 직업을 퇴직하고 오랜 날들을 그렇게 살면서 하루를 연명해 가고 있었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그녀의 어깨 위에 걸터앉던 날 아침, 그날도 변함없이 중앙 역은 시끌벅적하게 낡은 기적소리와 사람들의 구두발자국 소리가 요란을 피웠다.
몇 고객의 대필이 끝나자 어제 온 고객이 꼬마의 손을 잡고 다시 나타났다. 아이의 아빠에게 사진을 보내겠다고 한 뒤, 그녀는 꼬마를 데리고 떠났다. 몇 분 뒤 중앙 역 앞에서 여인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사기꾼 도라의 주변을 갈 곳 잃은 꼬마는 서성인다. 꼬마가 알고 있는 유일한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도라는 아이를 유인해 신체장기를 매매하는 곳으로 팔아버리고 그 돈으로 텔레비전을 산다. 늦은 밤 도라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TV를 함께 본 친한 친구인 이레니의 말 한마디가 도라의 심연에 잠긴 인간성의 불씨에 불을 붙였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는 거야"
밤을 꼬박 샌 도라는 이른 새벽, 아이를 구출해 도망을 친다. 둘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인간본연의 선함과 끈끈한 정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꼬마의 집은 브라질의 끝이라고 하는 곳에 있었고 그녀는 아이를 아이의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길을 떠난다. 긴 인생의 여정이 그 길에서 펼쳐지고 종점에 도달한다. 그리고, 먼동이 뜨기 직전의 푸르스레한 하늘을 이고 중앙 역의 구둣발 소리를 내며 그녀는 아이를 떠난다.
직업으로 인해 자신이 나락의 길로 빠질 수도 있고 미래의 밝은 빛을 향해 걸어나올 수도 있다.
난 「중앙 역」을 「길」이란 제목으로 바꿔 버리고 싶다.
감독 월터 셀러스가 풀어내고자 하는 목적은 역이 아니라 인간의 여정과 그에 따른 삶의 복잡하고 미묘한 치근덕대는 일상과 과거의 혼합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원죄인 욕심을 시대의 대 공황이 거미줄처럼 엮어 그녀를 갈등의 두레박에 담아 놓는다.
우리들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하는 일생에서의 선과 악, 그 갈등의 고리를 영화의 주인공 도라에게 몽땅 떠넘기고 감독은 천연덕스럽게 뒷짐을 지고 있다.
도라는 감독의 의도를 철저하게 배분하기 시작했다. 내면의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을 리얼하게 그려나간다. 자신의 은밀한 과거 속에서 자신도 잊고 살았던 양면성과의 대립이 시작되는 어느 시점에서 그녀는 악마의 탈을 내려놓는다.
‘길'이란 인류와 생명이 붙어있는 모든 것들의 여정이며 생의 발로이다. 그 길을 따라서 한 생을 곡예하며 걷고 있는 우리들 또한 도라의 그림자에 동승자임이 분명한 것이다. 둔탁한 공황기에 먼동을 보며 미래를 향해 걷고 있는 도라, 그녀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의 참모습이라고 감독 역시 강조하고 있다.
누구나 인생의 끝자락에 서면 뒤돌아볼 수밖에 없다는 설득력 있는 감독의 표현이었다.
꼬마 죠수에(비니시우스트 올리베이라)는 도라의 과거였고 감독 자신의 과거일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 현대인들의 자화상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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