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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2008.06.16 00:00
  • 호수 715

[시 읽는 오후|당진작자들의 시 한편] 강우영 씨의 ‘부정’ - “흰머리가 늘어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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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父情


오랜 세월 바래어

아버지 머리카락 닮은 들풀 헝클어진 무덤에

봄아지랑이 덮고 누우신 아버지

때로는 잘못한다 매질도 하시지

잘한다 믿는다 그 말씀이

채찍인 줄 이제 압니다

제 앞에 큰애가 앙살하던 내 나이를 먹고 나서야

그 날 이후 아버지는 벙어리 되고

나는 아버지를 못 보는 장님 되었죠

벌써 서툰 말 연습하는 맏손녀

왜 엄마는 할비 보고 아버님이라셔

갈래머리 갸우뚱 그 애가 걸어도 반나절

용서의 아버지 기다린 백년

침묵의 회초리로 돌아올 오늘

당진의 영전에 새벽길 밝히울 향을 핍니다



이른 봄날 아버지 산소의 잔디가 아버지 머리칼을 닮았다. 세월이 내려 앉아 하얗게 쇠고 뙤약볕에 바랜 아버지의 머리칼. 거울 속에 비친 내 머리칼도 어느 덧 아버지의 머리칼을 닮았구나. 그제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꾸지람에 앙살하던 내 앞에서 침묵하셨던 아버지의 마음을.

“내리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자식에게 하는 만큼 부모님에게도 했더라면 지금의 죄송한 마음이 덜했을 텐데 그땐 미처 몰랐죠. 세상이 좋아질수록 부모님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어렵던 시절 자식들을 위해 살아오신 부모님이 지금 이 좋은 시절에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왜 늘 자식들은 늦은 후회를 하는지...”

이른 봄날, 집 뒷산에 모셔진 아버지의 무덤을 바라볼 때마다 강우영 씨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진다. 아버지의 꾸지람에 큰 소리로 대들었던 젊은 시절, 그 때의 죄송함을 강씨는 갚을 길 없는 것이 마음 아프다. 세월이 흘러 그도 흰머리가 내려앉은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어쩌면 자신은 아버지보다 더 엄한 아버지로 살고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엄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자식들이 느끼기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웃어 보인다.

그는 좋은 글귀를 만나면 적어두고 틈틈이 읽는다. 식당에 걸린 액자에서, TV에 나온 어느 교수의 말에서, 책에서 보고 들었던 좋은 말들을 적기 시작한 지도 벌써 30년이다.

강씨는 얼마 전 마음을 움직였던 글이라며 조용히 글을 읽어 내려갔다.

“세월이 가는 걸 본 사람도 나무가 크는 걸 본 사람도 없는데 세월은 가고 나무는 자랍니다. 나무는 뿌리만큼 자란다고 합니다. 뿌리보다 웃자란 미루나무는 바람이 좀 세게 불면 나가 자빠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가 나무를 지탱하고 있는데 눈에 뜨이지 않는 일 보다는 눈에 보이는 나무가 되길 바라는 것이 민심같이 느껴집니다. 보이는 나무에만 신경쓰며 살기보다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강우영 씨

●당진 출생

●성호건설 대표

●호수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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