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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9.05.31 00:00
  • 호수 276

어느 장애부부의 만남과 예쁜 아들 용일이 - 용일이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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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정의 달 특집 - 우리이웃



어느 장애부부의 만남과 예쁜 아들 용일이



“선생님, 1학년때 선생님 어디 갔어요? 우리 둘이 만났었어요”



당진읍 김한선·김인옥·김용일 가족



용일이(12세)네 가족을 만났다. 용일이네는 당진읍 호서중학교 테니스장과 도로를 마주하고 있는 조그만 가게방이다. 도로옆에 움푹 꺼져들어간 낮은 기와지붕은 담배표시와 공중전화표시가 없다면 누구도 가게임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허름하다. 하지만 집앞에 작은 은행, 나무 한그루와 덩쿨장미가 담장 대신 얌전히 서 있다.

전화를 받은 용일이 아버지가 가게방 문 옆에 몸을 기대고 서 있다가 반겨주었다. 1급 지체장애자인 용일이 아버지가 문지방을 간신히 넘어설 무렵 자전거를 타고 쏘다니던 용일이가 들어왔다. 용일이 엄마 김인옥(43세)씨도 들어와 세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앉았다.

낯선 방문객 때문에 잠시 어색했을 뿐 분위기는 결코 딱딱하지 않았다. 용일이가 쉴새없이 들락거리며 옷도 갈아입고 손님에게 곧잘 말도 건네고, 자전거를 씻고 매만지고 부산스럽게 굴었기 때문이다.

조그만 체구에 눈이 데글데글 커다란 용일이는 근처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고 있다. 새 자전거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는 용일이가 돼지저금통을 만지작거리다가 잠시 방을 나간 사이 용일이 아버지가 용일이에 대해 입을 뗐다.

두살때 소아마비를 앓다 뇌성마비까지 앓게 된 용일이 아버지는 알아듣기 힘든 자신의 말을 잘 전달하느라고 한음 한음에 공을 들여 말을 했다.

“우리 용일이는 아무 것도 몰라요. 말도, 글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제야 좥한글나라좦로 글자공부를 하고 있어요. 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참 걱정이예요.”

용일이 아버지 김한선(45세)씨. 어렸을 때 장애가 심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입학을 포기한 뒤 학교 앞에는 가보지도 못했다는 그가 제일 한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제대로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글이 너무 배우고 싶어서 아홉살 때 흙바닥에다 써보며 누나에게서 배운 게 있어 글과 셈을 어지간히 할 수 있다.

“우리 용일이는 잘 배워야할텐데...”

입을 통해 간신히 뱉어내기까지 이 말이 가슴 속에서는 얼마나 아프게 맴도는지, 용일이 아버지는 용일이 생각만 하면 ‘가슴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고 한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몸을 이끌고 상대방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어눌한 말로 물건을 팔기도 어렵다. 용일이 어머니는 셈이 어두워서 장사 또한 남편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용일이는 “우리 엄마 요리 잘해요”라고 자랑한다. 엄마는 옆에서 대견한 듯 빙그레 웃는다. 용일이 엄마는 요리만 잘하는게 아니다. 우두리에 사는 시부모님댁에 가서 농사일 거드는 것도 남편 대신 김인옥씨의 몫이다.

용일이 엄마 아빠는 87년 당진군의 중매로 결혼했다. 인천에 살던 김인옥씨가 이리로 시집와서 부모님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다 2년전 이 작은 가게방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장사가 잘될 리 없었다. 여기저기 대형할인매장들이 생기면서 굳이 이런 작은 가게를 찾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보호대상자에게 나오는 많지 않은 생계보조비로 생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년전부터 다니고 있는 성결교회에서도 조금씩 도와주고 있다.

옆집에서 줬다는 자전거를 열심히 씻어내던 용일이가 자전거 선수가 될 거라고 으쓱해했다. 정말로 용일이는 커다란 성인용 자전거를 잘도 탄다. 이제 곧 있을 교회 장기자랑에서도 멋진 묘기를 보여줄 거라나.

김한선씨는 힘겨운 몸짓으로 또 말한다.

“산다는 게 뭡니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거쟎아요? 많이 가지면 뭐해요. 남한테 피해 안주고 살면 되죠. 하지만 배워야죠. 그래야 이렇게 답답하지 않죠.”

용일이 아버지는 몇번이고 ‘용일이에게 미안하고 불쌍하다’고 나즈막히 말하며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 많은 생각을 지니고, 가눌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살기란 얼마나 가슴 쓰린 일일까.

교회에 나간 뒤로 마음이 편안해졌지만 그래도 용일이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하면 여느 부모들처럼 김씨도 잠을 못이룬다.

용일이는 기자보고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은 누구 가르쳐요” “기자예요? 나도 기자하고 싶다” 그러던 용일이는 얼마전 이 가게방에 도둑이 들었던 속상한 얘기를 꺼내며 ‘경찰은 왜 도둑을 안 잡아줘요? 난 좋은 경찰이 돼서 도둑을 잡을래요’ 한다. ‘선생님, 도둑이 못들어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세요?’ 하고 간곡한 눈으로 묻기도 한다.

그러더니 용일이는 강아지 샌디에게 눈길을 준채 무심한 척 가슴 속에 묻어둔 얘기를 꺼냈다.

“선생님, 황수경 선생님 어디 있는지 알아요? 못만나고 그냥 갔어요. 1학년 때 선생님요, 생각나요... 우리 둘이 만났었어요. 소풍 때도 같이 가고요... 우리 집에도 한번 왔어요...”

그랬구나. 그뒤로 이 집에 오신 선생님은 아무도 안계셨구나. 당진읍에서 한달에 한번 이발봉사자를 데리고 오는 사회복지사 조금영씨 말고는.

“용일아, 밥 잘먹고 글자도 배우고 있으면 아줌마가 ‘기자’ 가르쳐줄께.”

돌아서서 오는 길에 부리부리 큰 눈이 예쁜, 작은아이 용일이가 자꾸 눈에 밟혔다.

아내는 남편의 팔다리가, 때로는 입이 되어주고, 남편은 아내의 생각을 대신해주는 부부. 큰 싸움없이 이 지상에서의 삶과 만남을 받아들이고 행복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 평화와 기도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 이 부부와 용일이에게 지상에서 가장 좋은 은총이 내리기를.

김태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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