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4-26 19:24 (금)

본문영역

[새벽을 여는 사람들1 - 환경미화원 김현동 씨] “편하고 좋은 것만 찾으니 할 일이 없지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명절도 없는 청소일
당진읍내 27명 환경미화원 새벽 4시부터 근무

[편집자주]
 ‘유흥가의 영업도 종료를 하고 동이 터올 때쯤 청소차가 지나가며 지난밤 쏟아냈던 배설물을 치운다. 그러고 나면 식품 배달차, 그리고 부지런한 서민들의 차가 지나간다. 청소를 하고, 문을 열고 물건을 배달하고…. 그렇게 도시를 돌아가게 하는 사람들이 뒤에서 바삐 움직이는 시간이다. 새벽 시간에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시 화장한 사람들에게 도회지를 넘겨주고 뒷선으로 물러난다. - 여행가 이안수’
 본지는 새해를 맞아 모두가 잠든 시각, 묵묵히 자신의 일터에서 세상의 아침을 준비하는 이웃들을 만날 예정이다. 인력시장에 나온 노동자, 어두운 밤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하루 장사를 준비하는 시장 상인들.... 서민들과 동행하며 나눈 새벽이야기를 연재한다.

 늦은 오후부터 내린 겨울비가 새벽녘까지 도시를 적시고 있다. ‘털털털’ 쓰레기봉지를 끼운 김현동(64, 읍내리) 씨의 손수레가 조용한 새벽 거리를 울린다. 김씨는 빗물에 젖은 전단지며 음료수병을 집게로 집어 올린다. 어두운 거리를 뒹구는 작은 담배꽁초 하나도 놓치지 않는 솜씨에서 29년 환경미화원 연륜이 묻어난다.
“아이고 말도 말아요. 담배꽁초가 얼마나 많은지. 운전하면서 창밖으로 버리고, 길가다 피우고 버리고...”
금새 쓰레기 봉지가 꽉 찼다. 하루에 20리터 쓰레기 봉지가 서너개는 거뜬히 나오고 많을 때는 다섯봉지를 주울 때도 있단다. 김 씨는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을 시작한다. 동료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당진읍사무소 앞마당에 모여 체조로 몸을 푼 뒤 각자 맡은 구역을 돌며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다. 김 씨는 이교다리에서 탑동사거리까지 오른쪽 인도를 담당한다. 이 거리를 왕복해서 청소하고 난 뒤 한 시간 동안 아침을 먹고 다시 낮 12시까지 다른 구역에서 쓰레기를 줍는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연중 내내 하는 일이다.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명절도 없이 일한다. 추운 겨울, 칼날 같은 새벽바람에도 두꺼운 방한 장갑은 낄 수 없다. 손이 둔해지면 쓰레기를 쓸고 줍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두운 새벽길을 쌩쌩 달리는 차들 때문에 안전사고가 가장 걱
정이다. 그래도 김씨는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냐며 웃었다.
“집에서 놀면 뭐한대요. 내 몸둥이 성하니까 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일 하려고 들면 얼마든지 할 일이 있죠. 편하고 좋은 것만 찾으니 할 일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지...”
당진읍 우두리가 본가인 김 씨는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읍내로 나왔단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은 시내에서 8남매를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빚보증 때문에 집안이 어려워졌다.
“31살 되던 해에 장가를 가서 공사판을 전전하며 막노동을 해서 두 아들을 키웠죠. 그러다 이장님이 환경미화원 일을 소개시켜줘서 하게 됐어유. 처음 두 달 동안은 죽어도 못하겠더라고. 남들 잘 때 일어나야지, 무거운 연탄재 들어 올리려니 어깻죽지가 남아나질 않더라고유. 이제는 익숙해져서 새벽에 일어나는 건 자동이지. 일거리 없을 걱정 안 해도 되고 매일 일 할 수 있으니 한결 좋지유.”
가진 것 없는 이에겐 성한 몸둥이가 큰 재산이라는 김 씨도 요새는 나이가 들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여태 고생하면서도 그런 생각 안 들었는데, 나이 먹으니까 허무하고 서럽대요. 마음은 있는데 하루가 다르게 힘이 드니까.”


그래도 장성한 두 아들을 생각하면 뿌듯하다. 대학 가르칠 때는 말할것 없이 어려웠지만 속썩이지 않고 잘 자라 자기 일자리 찾아간 아이들이 고맙기도 하고 보람도 느낀다고. 가진 것이 많던 적던 자식 키우는 아비마음은 다 같은가 보다.
“애들은 그만하라고 하는데, 일 하던 사람이 놀면 병나는 법이거든. 애들 결혼하는 데 방이라도 얻어주고 해야 하는데. 없는 사람은 빚도 못 얻어요. 세상에 빚지고는 못 사는 법이지만...”
김씨는 술 취한 젊은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와도 귀 닫고 묵묵히 거리를 치운다. 아침 출근길이 김 씨를 비롯해 당진읍내에서 새벽을 여는 27명의 환경미화원들 덕분에 비온 뒤 갠 하늘만큼 말끔하다.                  /우현선 기자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