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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1999.09.06 00:00
  • 호수 289

바른지역언론연대 유럽연수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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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지역언론연대 유럽연수기



한 도시안에 있는

마약중독자들과 괴테박물관



250년 된 괴테생가도, 젊은 마약중독자도 보호되는 철학의 나라

집단성 띤 민족주의·정밀하고 차가운 이성이 낳은 독특한 광기



유럽연수 일정 8박9일은 대부분 이동하는데 시간이 소요되었다. 여행 앞뒤의 만 이틀을 비행기 안에서 새우처럼 지내야만 했다. 각기 독특한 세나라를 돌며 지방자치시스템과 지역신문의 현황을 알아보려고 애쓰기에 나머지 일주일의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더구나 수박 겉을 핥아서라도 그에 대한 한가지 정보를 더 얻기 위해 일행들의 정신은 사납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렵게 얻은 기회, 어떻게든 한가지라도 더 보고 더 느끼고 싶었다(지역신문에 대한 소개는 후에 별도로 다룰 것임).

좥유로패스좦 한장이면 기차로 어디든 어렵지 않게 국경을 넘어 다닐 수 있는 유럽은 EC(유럽공동체)라고 부를 만했다. 스위스 루체른에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동안 차창 밖 풍경에서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초원이 사라졌다. 비슷한 주택형태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창가에 꽃은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차츰 덧문도 사라지고 창문이 조금씩 커져갔다. 지붕의 경사도 완만해져 갔다. 이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일, 그 차이에서 원인을 추리해 보는 일은 즐거웠다.

그리고 여행의 또 한가지 묘미는 함께 여행하는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다. 빠듯한 일상에서 나눌 수 없었던 이야기들, 하지만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들이 확대경에 잡힌 피사체처럼 갑자기 대화의 쟁반에 오란다. 운명에 관해서, 삶과 죽음에 관해서, 아니면 어느날 겪은 비인간적인 경험들에 대해서.



전쟁과 함께 사라진 고풍스러운 멋



프랑크푸르트의 첫인상은 영국이나 스위스의 대도시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영국 런던의 도시와 건축물이 제국의 전통적 무게와 고풍스러운 우아함을 풍겼다면 스위스에서는 그와 비슷하면서도 훨씬 섬세하게 다듬고 가꾼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이라는 나라의 도시는 이런 나라들과 이질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현대적이고 평면적이었다. 물론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가 국제도시·상업도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문득 ‘전쟁을 거친 나라’라는 생각이 스쳤다. 전쟁은 참 많은 것을 파괴시킨다. 전통을 포함해서.

이 도시에 내려서 우리가 처음 맞딱뜨린 것은 마약중독자였다. 키가 크고 창백하게 야윈 한 청년. 그의 비틀거리는 느린 걸음이 도시의 인상을 어둡게 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본 것은 ‘윤락가’였다. 역 건너편으로 우연히 접어든 거리가 하필 그곳이었다. 대도시 한복판에 그런 거리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모든 간판에 ‘sex’라는 글자가 새겨진 묘한 거리를 벗어나기 위해 한참을 걷는 동안 모두가 기진맥진했다.

한 남자일행이 이런 소리를 했다.

“웬만큼 가려져 있어야 호기심이 생긴다는 말이 맞네요. 이 거리를 지나고 보니 호기심은 커녕 아주 역겹고 혐오스러운데요.”

복지가 질서보다 우선하는 나라



독일은 마약과 ‘성(sex)’산업이 양성화되어 있다. 거리에 마약중독자들이 많은 것도, 도시복판에 Sex Shop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약중독자들은 단속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강제로 보호할 수 없다. 그들 자신의 의견을 물어 치료받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치료를 주선하지만 본인이 원치않을 경우 그들은 지원금을 받고 다시 거리로 내보내진다. 도시의 미관을 위해 흉물스러운(?) 그들을 강제로 치워버리는(?) 따위의 일은 없는 것이다.

반면 마약거래·공급자는 엄중하게 단속되고 분명한 범법자다. 마약중독자는 환자요 피해자지만 마약공급자는 분명한 가해자라는 논리인 것이다.

성산업의 양성화란 좀 다른 의미다.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정부에 등록을 하고 세금을 낸다. 심지어 TV광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정식영업자들로서의 권리를 인정받는다. 어차피 모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곰팡이처럼 음성적으로 번지는 이 두가지를 양성화 해버린 것은 독일의 자신감인가? 모험인가?

독일 뿐 아니라 영국과 스위스에도, 그리고 내가 아는 지구위 어느 땅에도 공통적으로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걸인과 쓰레기와 낙서였다. 이것들은 어쩌면 완벽하지 못한 인간과 인간사회의 그물에서 떨어진 앙금같은 것들이다. 다시 걸러내야 할 것들이다. 그럴려면 인간과 사회의 그물은 더 촘촘히 짜여져야 할 것이다.

홍세화씨는 최근 그의 책 좥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좦에서 말한다. 어쨌든 유럽은 복지가 질서보다 중시되는 나라들이라고.



지하 5층까지 자연체광이 되는 건물



우리가 독일에 머문 것은 전날 오후 도착해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난 프랑크푸르트가 전부였다. 우리가 직접 본 것은 실제 독일의 좥새발의 피좦도 안되는 부분일 게다.

그런 가운데서도 인상깊은 곳이 두 군데 있었다. 그 한 곳은 역 가까이 있는 헤센주 주립세무소였다. 과거 가톨릭교회였던 웅장한 황토색 건물을 통과해 들어가자 그 안에는 맑은 하늘아래 엄청난 건물들이 숨겨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호수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건물들처럼 지하5층까지 자연체광이 되도록 해놓았다.

‘지하’하면 벽이 흙에 접해있고 대낮에도 불을 켜놓아야 하는 우리의 개념과 다른 건물이었다. 그런 건물들이 예닐곱동 서있고 건물과 건물은 지표높이로 건축된 다리들로 연결되어 있다. 건물 이외의 모든 공간은 잔디와 수목으로 뒤덮여 흡사 대형식물원이나 공원처럼 보였다. 건축물과 자연의 완전한 조화라고나 할까.

또 한 곳은 역에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괴테하우스와 괴테박물관이었다. 이튿날 아침, 서둘러 그곳을 찾아간 우리는 애석하게도 개관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건물안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250년 전 이 노란집에서 태어난 괴테를 잠시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독일의 이미지는 전날의 어두운 이미지에서 빨리 회복되었다.

괴테는 이 집에서 좥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좦과 좥파우스트좦를 집필했다고 한다. 지금 그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괴테의 모든 것이 바로 옆에 지은 괴테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괴테하우스에서 돌아가는 거리 또한 좋았다. 끝없는 국장가(연극을 상영하는 곳), 그림도구를 파는 곳, 아이들의 책을 파는 서점, 미용실, 양품점들이 아담하게 이어져 있었는데 여느 거리와 분위기가 달랐다. 그 거리는 깨끗하고 순수한 개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차가운 이성과 배합된 비극적인 열정



독일은 한마디로 잘 알 수 없었다.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열정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지적인 것 같기도 하고, 광적인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독일과 관련해 연상되는 것, 특히 인물들의 상반된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흔히 독일은 철학의 본고장이라고 부른다. 헤겔에서부터 프랑크푸르트학파로 불리는 많은 철학자들. 이런 첫 이미지처럼 독일인은 프랑스인과 대비되어 불릴 정도로 지적이며 논리적이며 치밀하며 차갑다.

독일사람들의 어떤 면모들은 한국사람과 몹시 흡사하다고 한다. 정확함, 완벽주의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괴테나 실러, 베토벤, 횔덜린 처럼 일종의 광기를 소유한 열정적인 예술가들의 존재를 설명하자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문화비평가들은 독일인의 철저하고 지독한 완벽주의가 광기에 이를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철인 ‘니체’ 또한 독일의 사상가가 아닌가. 분명한 것은 독일인의 열정에는 화려함이나 흥겨움이나 기쁨보다는 신랄함과 회의와 비극이 더 많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서유럽에서도 기이하게 ‘민족주의’가 강한 독일. 한 때 민족적 광기로 치달아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기도 했던 독일은 서유럽에서 드물게 ‘집단주의’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역주의처럼 저열한 집단주의는 아니다.

유럽의 보편적인 정서에 독일만의 특수한 요소, 거기다 그것들에 대한 거부와 저항정신까지 포함해 독일의 문화예술은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 당연한 결론으로 글을 맺는다.



※ 이것으로 바른지역언론연대 유럽연수기 3회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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