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읍 채운리 탑동에서 손주 셋을 키우며 살아가는 정의호(70세) 할아버지는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라며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가재도구를 가리키며 고개를 내젓는다. 할아버지는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두칸짜리 셋방이 파손돼 크게 상심해 있다. 복구해놓지 못하면 월 20만원의 정부 보조비만으로 다섯식구가 먹고 살아야 할 판이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아빠가 사망하자 엄마마저 가출해 고아 아닌 고아가 된 손주 셋을 도맡아 키워온지 벌써 10년이 넘는다. 다행히 집을 갖고 있어 방 두칸 세놓아 어려운 살림 꾸려 왔는데 그게 무너졌으니 세입자들이 짐꾸려 나가면 그날로 생활비가 끊기게 된다. 무너진 집 고치는 게 당장 급한데 돌려 쓸 돈이 있을리 없다.
"나이라도 젊어야 어디가서 품이라도 팔지."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주녀석들 뒷바라지도 만만치가 않다며 할아버지는 한숨 짓는다. 막노동판에서 평생을 고생만 하여 살아왔지만, 자식을 가슴에 묻고 모진 세월 견뎌왔지만 칠순이 다 돼 평생에 처음보는 물난리를 당한 할아버지는 더 이상 재기를 다짐할 여력도, 그럴 수 있는 기회도 없다는 것을 안다는 듯 체념에 가까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