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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1998.09.07 00:00
  • 호수 239

□애국가 작사자 논란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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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강 김인식 선생 누구인가?

추강 김인식 선생은 1885년 평양출생으로 작곡가이자 서예가 양악교사였다. 근대 서양음악의 개척자로 11세 때 마포삼열 선교사가 운영하는 판교소학교를 거쳐 평양 숭덕학교에서 창가를 배웠으며 16세에 선교사 부인인 헌트와 스눅에게 성악을 배우고 오르간 연습을 하면서 서양음악에 빠져 들었다. 실력이 뛰어나 중3 때 저학년 음악시간에 교사노릇을 했으며, 바이올린을 구입해 혼자 줄을 맞추어 찬송가를 켜기도 했다.
미국유학의 소망을 버리고 음악교사가 없던 당시 교육자의 길을 택해 상동청년학원, 기호·진명·오성·경신·휘문·보성·정신·배화·배재학교 음악교사를 역임했다. 조선 정악전습소 양악부 교사로 활동하다 1909년 최초의 음악전문 교육기관인 조양 구락부가 생기자 교사로 활동, 이후 이상준, 홍난파 등을 가르쳤으며 황성기독청년회(현 YMCA의 모체)의 경성합창대를 조직해 합창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신민회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영어에 능통해 찬송가 번역을 1백여곡 이상 해 놓았으며 144장은 직접 작사하기도 했다. 특히 국악보를 서양악보로 채보(옮겨 적음)한 업적은 당대 최초로 국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윤치호 선생이 원장으로 있던 한영서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당시 애국가를 학생들에게 가르치자 윤치호 선생이 ‘참 좋은 노래’라며 감탄을 보내기도 했다고 그의 일기에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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