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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0.10.09 00:00
  • 호수 341

상록문화제 주부백일장 대상, '어머니, 그리고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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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문화제 주부백일장 대상 수상작

윤 혜 순 (대호지면 두산리)

어머니, 그리고 나의 삶

“얘, 거기 비 많이 오니? 여긴 비오는데 벼는 괜찮니?”
오늘도 어김없이 걱정스런 친정어머니는 전화를 주셨다. 수확을 앞둔 벼가 쓰러지면 왼종일 허리 구부려 벼포기를 세우느라 논바닥을 헤맬 자식 생각에 마음이 저리신게다.
“괜찮아요. 아직은 염려마세요.”
안심을 시켜드리는 내 마음 역시 안쓰럽다. 언제쯤 어머닌 내 걱정 않고 편히 사실까 마음이 저려온다.
구남매에 형제많고 농사많은 부천의 쌀동네로 시집을 오신 어머닌 맏며느리로 그 많은 농사일과 형제들 뒷바라지로 평생을 보내신 분이다.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하나하나 농토를 마련하신 할아버지께선 그 시절에는 흔치않은 여학교를 나온 맏며느리를 무척 흡족해 하셨단다.
‘여자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남존여비의 고루한 생각이 아닌 착하신 성품과 넓은 이해심으로 늘 어머니를 말없이 밀어주셨던 할아버지덕에 그 힘으로 맏며느리자리를 지켰노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시곤 했다.
결혼 후에 군대를 가신 아버지가 없는 5년동안 시부모님 봉양과 고만고만한 형제들과 일꾼들 뒤치닥거리, 힘겨운 세월에 외로움은 느낄새도 없었노라고 하셨지만 왜 없었으랴. 예전에 우연히 보게된 누런 갱지 속의 어머니 일기장은 삶의 고단함과 남편없는 쓸쓸함과 아이가 없는 서운함이 절절히 묻어 있었다.
밤이면 집안에서 야학을 열어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셨는데 이승만 대통령의 그 시절 문맹퇴치운동의 일환으로 문교부장관의 빛바랜 누런 감사장은 지금도 어머니 장롱 속에 들어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군제대 후 태어난 나와 세동생. 맏이인 난 공부도 행동도 모범생이어야 하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서 힘겨웠었다. 집안행사는 좀 많은가. 제사, 생신, 명절, 결혼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맏며느리, 그 바쁘고 고단한 어머니의 삶이 애처롭고 힘겨워서 난 절대 맏이로는 시집 안간다고 다짐을 했건만 종가집 맏며느리로 시집을 온 나는 그 힘들고 고단한 삶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가. 육이오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구사일생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동향으로 만난 외삼촌의 중매로 시집을 오신 어머니처럼, 외삼촌과 친구분이셨던 시아버지의 인연으로 결혼을 하게 됐다.
논농사가 주요작물인 경기도에 비해 담배, 꽈리고추 등 밭농사가 많고 예전처럼 일꾼이 없는데다 일손 구하기도 힘들어 힘겨운 노동으로 이어지는 삶이 어머닌 늘 애처롭고 가슴 저리신가보다. 예전에 내가 어머니의 삶이 그래 보인 것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두아이 뒷바라지 소홀히 하는 걸 제일 걱정하신다.
학창시절 우리 사남매 학교행사 땐 그 바쁜 와중에도 한복 곱게곱게 차려 입으시고 어김없이 나타나시곤 했다. 소풍 때면 색깔고운 김밥을 싸주시고 생일 때면 수수팥떡과 백설기를 잊지 않으셨던 어머니.
이제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가신지도 십수년. 기름진 옥토는 주택단지로 바뀌어 아파트가 들어섰고 몇년만에 가본 고향은 전혀 가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도 변했다. 그 많던 농사일을 접으신 어머닌 이제서야 당신의 삶의 여유를 가지셨다. 늦게 시작하신 서예공부가 상을 타실만큼 늘었고 영어회화와 컴퓨터도 배우셨다. 합창단에 들어 노래연습도 열심히 하시고 동창들과의 모임도 빼놓지 않고 참석하셔서 여행도 자주 다니신다. 칠순의 연세에 카메라에 취미를 붙이셔서 방학 때면 올라가는 외손주들 데리고 다니며 사진도 많이 찍어주셨다.
내가 키운 상추, 오이, 고추 등 묘종을 보내드리면 뒤곁에 심으셔서 풍성한 식탁을 마련하시고 채송화, 맨드라미, 봉숭아, 뒤엔 키 큰 해바라기, 붓꽃, 옛적 담장밑 화단에 심었던 소박하고 정다웠던 꽃들은 지금도 화단을 장식하고 있다. 봉숭아꽃 따서 손에 곱게 물들여 주셨던 어머니. 바쁜 농사일에 화장이라곤 담을 쌓고 사는 내게 열심히 화장품을 사서 보내고 컴퓨터 없인 학교공부도 어렵다고 동네에서 제일 먼저 컴퓨터를 갖게 보내주시고 바쁜 생활 속에서도 늘 책을 놓지 말라고 책을 보내주시는 덕에 좁고 작은 틀에서 벗어나 길고 넓게 보는 안목을 키워주셨던 것 같다.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접어든 이즈음 나는 내 노년에 대해 생각해 본다. 평생을 허리가 휘도록 자식 뒷바라지 해서 교육시키고 결혼시키고 분가해 객지에 나가 제각기 사는 자식들. 일년에 생일 아니면 명절 때 잠깐 보는 자식들 떠나 보내며 눈물 짓는 우리 시골 농촌의 부모님들의 삶도 애닳고 존경스럽지만 내 세대에선 좀더 다른 나은 삶이 이어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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