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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8.11.30 00:00
  • 호수 250

소난지 의병항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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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초토화 작전에 밀린 의병 소난지에서 최후 격전
역사에 묻혀 있다 사료수집 활동 통해
묘역조성, 기념사업회 발족해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침탈당하게 되자 수원지방에서 봉기하여 활약하던 홍일초 휘하의 의병들이 일본의 초토화 작전에 밀려 홍주전투에서 패퇴한 의병들과 합류하면서 당시 호남지방 관곡 운반선들의 중간 정박지였던 석문면 소난지도에 주둔하며 후일을 도모했다.
그러나 이를 탐지한 일군이 1907년 2월 12일 1개소대 병력을 솔가지로 위장한 배로 기습침투함에 따라 밤새도록 총격전을 벌이다 이튿날 의병들의 탄약이 떨어지자 섬 동쪽끝 둠바벌까지 밀려 육탄전으로 대항하다 150명 전원이 전사하는 비운을 겪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질곡의 시대를 거치면서 단절의 역사 속에 묻히고 사라질 위기에 이르렀으나 지난 70년 사실을 접한 석문중학교 신이균 이사장과 김부영 교장 등이 현지를 답사한 후 교직원 및 학생, 주민들의 협조를 얻어 흩어진 유골을 수습하고 새로 묘역을 만들어 매년 현충일에 참배행사를 거행해 왔다.
한편 신양웅 교사(현 석문중교장)가 중심이 되어 끈질기게 사료수집 활동을 벌여 82년 의병총비를 건립하고 87년부터 석문면과 석문면 번영회가 주관하여 추모제향을 봉행하다 97년 5월 16일 소난지의병항쟁기념사업회가 발족하여 지난 17일 비로소 거군적인 추모식을 처음 거행하게 된 것이다.
※참고문헌 및 고증자료:한국유적 총람(문공부 편), 한국독립운동사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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