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유(1684~1750)장군은 조선 숙종ㆍ영조때 사람으로 본관이 한산이다. 숙종 45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도문무사 자헌지중추부사, 양성, 낙안등 현감, 경상도 좌수사, 의주부윤 형조판서를 역임했다. 명조 5년(1728년) 청주에서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오명항의 관군과 함께 반란군을 진압하여 양무 2등공신이 되었다. 신평면 거산리 독암에는 한원군 이만유 장군을 모신 사당이 있는데 이 사당은 광무 3년(1889년)에 지어진 목조 맞배 기와집이다. 이장군의 사당과 유물은 이만유장군의 종손들이 대대로 지켜오고 있으며 지금은 이은원(83세) 옹이 관리하고 있다. 10년전까지만 해도 이은원 옹의 형님인 故 이하원씨가 관리했다. 이옹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이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며 ‘호랑이를 잡을만큼 힘이 장사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왔다. 이옹의 가장 오랜 기억으로는 자신이 5세였던 왜정때 일본군들이 이 사당에 왔다가 참배하고 돌아갔던 것이다. 이만유장군의 유품인 두벌의 영정과 장검, 활, 교지, 진통등은 84년 12월 30일 충남유형문화재 84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그런데 군의 각종 자료에는 이장군의 유품이 여전히 사당 한원사에 모셔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 유품은 이은원씨가 보관하고 있다. 이옹에 따르면 현재 이만유장군의 영정은 습기가 차고 흘러내리는 등 적잖이 훼손된 채 나무궤에 보관중인 것으로 나타나 서둘러 이를 복구해야 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