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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1999.05.03 00:00
  • 호수 272

[건축문화의 해 기행수필]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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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생긴 부석사 무량수전

눈꼽쟁이 창으로 본 옛날 4 - 맛있게 생긴 부석사 무량수전

내 주변 사람들은 거의가 이상한 짓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 역마살 낀 서양화가가 있다. 그림작업을 하다가는 별 안간 다 떨어진 고물 가방을 메고 훌쩍 떠나 돌아다니다 제자리로 온다. 그가 다니는 곳은 대개 우리 전통문화쪽 유적이다. 몇 년 전 청자 가마터를 찾아 전남 강진을 헤맨 얘기, 옛 절터를 찾으면서 독사 물린 얘기, 우리들의 옛집을 찾아 돌던 이야기를 할 때면 그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인다. 본업이 그림쟁이가, 그것도 서양화가 주제에 프랑스 파리 얘기는 들어보질 못한다. 그럴 때 나는 그에게 왠지 기가 죽곤 했다. 그의 간단한 고물 가방 속에는 괴상망칙한 것이 많다. 어는 때는 서산군 성연리에서 주워 왔다는 청자 쪼가리, 옛 절터에서 가져왔다는 쏠개미가 아직도 쌀쌀 기어다니는 개와 쪽. 그런 그가 바람과 함께 당진에 나타난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그 가방 속이 궁금하다. 꼭 땅꾼 가방 같다. "웬일이여" "심심해서요" "이번엔 무슨 쪼가리여" 고물가방 쟈크를 찍 열고 무얼 꺼내는 듯 싶더니 나온 것은 맨손이다. 그리고는 "오늘은 빈 가방입니다." 그 가방 속 채울려고 왔다는 것이다. 난데없이 "무량수전 할아버지 뵈러 가시지요." 천(天)살 먹은 고려 때 집이니까 할아버지라고 해야 한단다. 남들이 볼 때 나는 껄쩍지근 한 것 없이 사는 줄 아는데 이런 일 땜에 머리가 허옇게 세는 줄 아는 이는 당진에는 몇 없을 것이다.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의 절 집 무량수전까지는 여기서 7~8시간은 가야 한다. 더구나 밤길은 더 걸릴 수도 있다. "절 집이라면 수덕사를 가지" 그래도 무량수전이라고 박박 우긴다. 몇 년 전 카메라 여행을 할 대 다녀온 기억이 난다. 오래된 국보 건축물이라는 느낌 외에는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으나 별 수 없이 밤길을 떠났다. 새벽 산바람이 참 좋다. 이 맛 땜에 산에들 미쳐 도는가 보다. 무량수전 돌이를 한없이 한 그는 땅에 덜퍽 앉더니 나보고 "북어생각 안나세요?" "아니, 술 생각나남? 이 새벽에" "그게 아니고요. 무량수전 재목색깔이 북어 뜯어 놓은 색깔같지 않으세요" 입이 벌어진다. 참! 해필 웬 북어. 산을 내려온다. 약수를 고봉으로 한 사발 마신다. 아침상에 소주를 계속 마신다. "안주 좀 먹어" 행복한 얼굴의 그가 " 저는 지금 안주로 무량수전을 뜯어 먹고 있어요." 그후 나는 소주병을 보면 무량수전이 그리웁고 어물전 북어 생각만 해도 슬슬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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