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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박언년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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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새벽 트럭타고 일하러 간다

박언년 할머니

이른새벽 트럭타고 일하러 간다
콩팔러 간 영감은 오지 않고 30년 자식없이 혼자 집 지켜

박언년(73세)할머니는 수락산 자락에서 어렵게 살다가 들판으로 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늦은 나이에 시집을 갔다.
그러나 산골이나 들이나 내 손에 쥔것이 없으면 배곯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살고계시는 넓을 들 합덕읍의 상흑으로는 33세때에 시집을 왔다.
산다는 것이 뭔지 또 남남끼리 만나 한세상 살아가자고 맹세하였건만 겨우 십년남짓 함께 살다가 영감님은 콩팔러 떠나가시고 지금까지 30여년을 슬하에 자식하나 두지 못하고 홀로 집을 지키고 계신다.
박언년할머니는 긴 세월동안 지독한 외로움과 한과 시름으로 오늘날까지 지내셨건만 뜻밖에도 따뜻한 봄날씨마냥 포근하면서 활기넘치는 생활을 하고 계시다.
오랜동안 혼자살면서 체념하신 탓인지, 그렇지 않으면 요사이 마음의 안정을 얻은 것인지 즐겁게 살고 계시는 것 같다.
키로 쌀을 까불고 계시기에 무슨 쌀이냐고 물으니 정부에서 우리같은 불쌍한 사람에게 배급주는 쌀이라고 대답하신다. 쌀의 질이 어떠냐고 하니 지금은 일반미를 주어서 맛은 있지만 10Kg으로는 한달 양식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신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먹을 양식이라도 넉넉하게 보조해 드릴 수 없을까 혼자만의 생각을 해 본다.
“쓴 나물을 데워 낸 물이 고기맛 보다 더 맛이 있네
풀로 지붕을 덮은 집, 그것이 내 분수에 맞는구나
모자랄 것이 없고 더 바랄것이 없는 이 내 살림에
저절로 마음의 평안은 깃들어 오지만
다만 임의 그리운 탓으로 걱정은 그것뿐이로구나.”
송강 정철이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자신의 심금을 토해낸 사미인곡중 한 대목이다.
행정구역으로는 합덕읍 신석리 일대를 상흑, 하흑이라고 부른다. 먼 옛날부터 서해의 밀물이 이 들판까지 갯벌을 조금씩 조
금씩 밀어 올려 검게 쌓인 탓에 상흑, 하흑이라고 이름이 붙혀졌는지 모르겠다.
박언년할머니는 열손가락의 손톱이 검게 죽어 너덜너덜하다. 오늘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파를 다듬으러 찬바람이 속옷사이로 스며드는 이른아침부터 트럭에 몸을 얹혀 들판을 달려간다. 하루종일 몇천 뿌리의 파를 다듬고 저녁노을이 질 무렵이면 집으로 온다. 하루일당 일만천원으로 품팔이를 하고 계신다. “며칠 있으면 파 종자 심으러 또 갑니다”하시면서 이런 일이라도 있으니 건강도 하고 또 이웃사람들과 말동무도 되고 얼마간의 용돈이라도 손에 들어오니 남에게 큰 신세 안지고 살고있다고 하시면서 즐거워하신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인가?
바로 이 합덕 들판은 그 옛날부터 지금의 삽교천을 따라 냇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자연법에 따라 바다의 밀물이 넓은 벌판으로 들어오던 길목이다. 이 물길을 따라 무수한 역사의 현장이 있었건만 묵묵한 대자연은 말이 없다.
지금으로부터 130년전 이 삽교천을 따라 유태계 독일인이며 일개 장사치에 지나지 않던 오페르트가 총 이십자루를 앞세우고
거슬러 올라와 아주 멍청한 만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이름하여 남연군묘 도굴사건이다. 그 묘는 당대에 나라를 손아귀에 넣고 주름잡던 대원군 이하응의 생부이며 고종황제의 할아버지의 묘였다. 묘의 부장품을 노략질하려고 왔던 오페르트가 미수에 그치고 돌아갔으나 조정에서는 큰 난리가 난 것이다. 이 사건은 병인양요의 실마리를 제공한 사건이고 한층 더 쇄국정책으로 나라안팍을 걷어닫고 지냈던 원인중의 하나가 된 사건이다.
이런 역사의 여울목에서 40여년을 홀로 살고 계시는 박언년할머니는 과거사를 알고 계시는지 또는 전혀 모르고 사시는지 오늘도 이른 새벽부터 찬공기를 가르며 넓고넓은 들판을 가르는 트럭에 올라 타 말동무들이 있어 즐겁고 생기가 넘쳐 흐른다는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으로 달려 가면서 주름진 얼굴에 환한 웃음짓고 손을 흔들어 주신다. 박언년할머니의 앞날에 더욱 건강과 즐거움이 가득하시도록 기자도 함께 손을 흔들어 드린다.

서금구/당진시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0457)363-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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